[박흥식 칼럼] 미디어는 밥이다

박흥식 승인 2023.09.24 20:56 의견 0
박흥식 언론학 교수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흥식 칼럼] 살아있는 것들은 다 어린 시절이 있다. 초목들은 씨앗에서 발아되어 싹을 내밀고 성장한다. 사람들은 아름드리 나무들조차 그 시작은 작은 씨앗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참나무들의 시작도 땅에 덜어진 작은 도토리다. 거목으로 우뚝하게 서있는 삼나무와 노송들도 그 시작은 작은 씨앗이다.

초목들은 제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남의 조력 없이 제힘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식물들은 햇빛과 기름진 땅, 그리고 대지를 적시는 강물과 품어주는 푸른산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동물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 어미나 그 밖의 존재들이 베푸는 도움이 필요하다.

새들은 알에서 갓 부화된 제 새끼들을 위해 부지런히 먹이감을 물어 나르고 포유동물들은 젖을 먹여 제 새끼들을 돌보며 키운다.

생명은 저 혼자 생겨나고 자라나는 법은 없다. 사람은 생명을 준 어머니가 있고, 가족 부양을 책임진 아버지가 있기에 독립된 인격체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갓난 아기는 무지와 결핍과 허약함 그 자체다. 누군가 그 갓난아이에게 젖이나 우유를 먹이고, 핏덩이를 씻기고, 따뜻한 옷으로 감싸 돌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고양이는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혀로 온몸을 핥아준다. 이는 새끼고양이가 신경말단을 깨우는데 필요한 촉각의 흥분을 겪지 못한다면 혼수에 빠진 채 죽기 때문이다.

생명들은 나고 자라는데 타자의 조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더 큰 존재로 도약하기 위해 마음과 이성이 자랄 수 있게 끊임없이 배워야만 한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누군가는 우리를 키워주는 것이다.

생명을 지속하고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공기와 물 그리고 밥이다. 이것은 은유적으로 자연과 미디어가 된다. 인간이 가지는 오감을 통해 인풋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코로 숨쉬고 입으로 먹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피부로 느낀다.

공기와 물과 밥은 코와 입으로 들어오고, 미디어는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며 음성과 소리와 이미지(그림과 영상)의 메시지다. 미디어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우리의 밥이다.

젊고 미숙한 내 영혼을 키운 것은 바로 미디어이다. 내가 읽은 무수한 책들과 라디오와 tv에서 보고 듣고 인터넷과 PC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미디어의 지식과 정보들이 나를 성장 시킨다.

우리는 성장하며 큰 변화를 겪는다. 통제 불가능한 힘과 격정, 결핍과 부조화로서의 세계를 온몸으로 겪는 유아기와 청년기는 내 인격이 형성되고 존재의 차별성이 형성되는 가능성의 시기이자 위기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제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성공과 실패, 쾌락과 고통, 시련과 시행착오 따위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겪는다. 그런 까닭에 미디어야 말로 자아와 영혼을 키우고 이끌어줄 참 스승이다.

내 몸을 지탱하는 것이 밥이라면 내 정신을 키우고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 바로 자연과 미디어이다. 산, 바위, 능선, 강, 고원, 대지, 밤하늘의 별들도 아집과 거짓된 자아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영감을 준다. 자연은 삶의 기슭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에게 생명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필요한 가르침을 베푼다.

미디어 역시 내 영혼을 적시고 몸을 자라게 한다. 모든 인간은 갓난아기가 젖을 빨듯 책과 문장을 탐독하며 빨아들여 피를 만들고 뼈대를 키운다. tv와 라디오의 뉴스와 영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하찮은 인간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가르침을 베풀고 우리를 키우는 것은 자연과 미디어다. 이 둘로부터 우리들은 생명의 고귀함과 내 삶의 가치와 존재하는 이유와 행위들에 대한 유의미한 계시를 받는다.

자연과 미디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무한한 깨달음과 가르침을 가져다 준다.

빽빽한 나무들을 뚫고 들어오는 한줄기 햇빛, 낮선 고장을 헤배다가 만난 어떤 길, 한나절을 빈둥대며 소일할 때 문득 바라본 구름 한 조각, 바람에 사각이는 마른 억새들 조차도 가르침을 베풀고 마음을 추스린다.

미디어는 길이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수 없다. 미디어에게 물어보면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다. 끝없이 광활한 대우주의 저너머는 어떤 시공간이 자리잡고 있는지, 온갖 만물 생명의 탄생과 우주의 질서,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과 사고, 전쟁과 화해,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선 악의 행위들에 대한 인과의 법칙들, 유희와 쾌락을 추구하고 부를 탐하는 어두운측면, 연민과 평화의 화목한 이웃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의 밝음과 어두움, 나의 가치와 소명이 어떠해야 할지 조차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미디어는 가르쳐 준다.

밥도 먹지 않고 공기와 물이 없이 살아갈 수 없듯이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의사 소통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생이 한줄기 강물이라면, 누구나 작고 소란스러운 급류같은 소년기를 보내고, 온갖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깊고 넓은 하류에 닿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없고 푸른 불멸의 바다가 가까이에 와 있다.

이미 내삶의 윤곽의 형태는 바꿀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움과 성장을 끝내서는 안된다.

미디어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세련되게 하며,

진실과 거짓을 가리고 이상(理想)과 아상(我想)의 참모습과의 만남으로 이끈다.

결과적으로 미디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풍요한 삶을 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는 또하나의 밥이다.

[사진=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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