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호서대학교 명예교수[사진=더코리아저널]
[이기영 기고] 바그너 할아버지의 초록 식탁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건강문제는 서구에서 들어온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전통 음식을 밀어내고 식탁을 점령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곡류, 육류, 채소 등 대부분의 식재료 들은 농약. 제초제 등 유독성 화학물질과 기계를 이용한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단작, 연작으로 좁은 축사나 비닐하우스에서 단기간에 대량 생산된다. 땅은 과도한 작물재배로 마그네슘 등 대부분의 미량 미네랄이 고갈된다. 이러한 재료를 가공해 만든 식품에는 운송과 저장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보존료를 사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현란한 발암성 타르계 색소를 첨가하고, 자극적인 맛을 내기 위해화학조미료와 당분, 소금을 과다하게 쓰며,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을 주로 사용한다. 더군다나 식재료중 3분의2이상을 차지하는 하얀색 식재료인 백미, 밀가루, 설탕,정제소금, 식용유 등은 수많은 가공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요 영양소들이 거의 다 제거된다.
이 염증성 초가공 식재료들은 주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로 소화는 잘 되지만 칼로리만 높고 에너지 대사를관장하는 마그네슘, 철분 등 미량 미네랄이나 비타민, 피토케미컬. 식이섬유 등의 주요 영양소가 대부분 제거되었기 때문에 우리 몸에 소화 흡수되어도 에너지 대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자주 듣는 ‘현대인들은 과잉영양으로 비만에 걸린다’는 말은 매우 잘못된 말이다. 예전 가난했던 시절엔 비만이 부의 상징이었지만 당뇨,고혈압과 함께 대사병의 한 증세일 뿐이다.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등 패스트 푸드를 전 세계로 수출해온 비만의 제국 미국 국민 들은 88%가 대사병에 걸려있다고 한다.
우리가 소화 흡수한 과잉의 당분이 세포내미토콘드리아에서 마그네슘과 철분 부족으로대사되지 못하고 피에 쌓여 오줌에 섞여 나가면 당뇨가 되고,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하고 지방이 되어 간에 쌓이면 지방간이 되고, 내장에쌓이면 내장지방, 피하지방에 쌓이면 비만이된다. 이러한 대사장애 때문에 대사병이라고 불리는 당뇨, 비만, 고혈압, 뇌졸중과 같은 만성병으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고통속에 사는 것이다.
요즘 암도 사실은 유전병이라기보다는 대사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소와마그네슘 부족으로 유해산소(ROS, ReactiveOxygen Species)가 대량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인체 내 에너지체인 ATP(Adenosin Tree Phosphate)를 만드는 세포내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가 망가져 기능을 못해 모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
각종 기계설비와 아까운 에너지를 써서 오히려 소중한 영양분을 죄다 없애버리고 국민들을 병주머니로 만들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이는 식품대기업들이 국민 건강보다는 영리를 위해 스트레스에 빠진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극적인 달고 짜고 기름진 맛과 외관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바그너 할아버지와의 만남과 독일 유학생활 10여 년 전, 모교인 베를린 공대에서 2주 동안 열린 ‘신재생 에너지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베를린을 방문했다. 당시 난 환경의 날을 맞아 갓 출판된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살림출판사』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유학 초창기에 살았던 베를린 남서부의 첼렌돌프 마을에 있는 한 집을 찾았다.
2005년에 출판된 이 책은 처음으로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다룬 환경도서로 당시 문화부추천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내용도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다루었다. 한겨레 신문에 50회나 연재한 ‘이기영의 환경이야기’를 정리해 지구 온난화부분을 심화시켰는데 고교에서 교재로도 사용되어 전국의 모든 도서관에 보급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주변을 몇 번이나 돌다가 겨우 찾아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나 그 집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마침 그전부터 살던 이웃집 노부부를 만나서 집주인 헤르만 바그너 할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음악 명가 리하르트 바그너 가의 한 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바그너 할아버지는 5년 전 101세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교사였던 딸이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바로 30분 전 휴가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1985년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바그너 할아버지는 갓 결혼한 가난한 우리 부부를 집세도 받지 않고 살게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당시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에도 딱딱한 대나무 침대에 달랑 담요 한 장만 덮고 주무셨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신 뒤 가부좌로 명상에 들어갔고 이어서 느린동작의 기공체조를 하셨다. 대개 오전 열 시경이나 되어야 간소한 채식으로만 식사를 했는데 키가 크고 마른 몸매였지만 매우 건강하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가끔 집 뒤에 있는 공원에서 함께 탁구를 쳤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으신지 한 시간을 넘게 쳐도 지치실 줄을 몰랐다. 오히려 내가 먼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도망쳐 나올 정도였다. 매달 한번 씩은 베를린필 실내악단 제자 음악인들이 와서 할아버지의 지도로 연습겸 하우스 콘서트를 열어 우릴기쁘게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우유도 안 드실 정도로 지독한 채식주의자였는데, 특별히 레폼하우스라는 유기농 식품점에서 사온 식품만 드셨고 저녁 식사는 대개 유기농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드셨다. 할아버지는 매주 베를린 자유대에서 열리는 동양철학 세미나에 참석하셨고 토론 내용을 말씀해 주시곤 했는데 난 한국인으로 거의 무지해 창피했지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가끔 우리 부부를 채식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는데 유기농 음식의 중요성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말씀해 주셨고 특히 육류를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가축이 도살될 때 스트레스호르몬이 많이 나와 건강에 아주 나쁘다고 강조하셔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안내로 주말 유기농 장터에도 따라다니며 건강 먹거리 체험을 하였다.
특히 할아버지는 한국 발효 음식인 콩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 김치, 김 등에 관심이 많으셨다. 식품을 전공한 나는 한국의 발효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드렸고 한국 음식문화의 영양적 우수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모님께서 김이나 미역 등을 소포로 보내주시면 할아버지와 일부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독일의 유기농 산업은 당시 유럽에서도 환경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독일인들이 중심이 돼 시작되었고 꾸준한 성장해 2009년부터는 연간 약 4~11%의 성장률을 기록해 2022년 독일 유기농 식료품 매출은 전체 대비 약 7%이고 경작지는 11%이다.
바그너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동양철학과 한사상 할아버지는 동양철학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노장사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셨다. 또한 서구에서 시작된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가 제국주의로 확산되면서 전 지구적인 생태계 파괴를 초래해 얼마 못가 인류문명이 곧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런 말씀은 독일의 과학기술을 배우러 멀리서 온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대학 시절 나는 당시 유행했던 서구 유래 실존철학 서적이나 민중신학 계열의 책들을 주로 탐독했는데 독일인 음악가로부터 처음으로 노장철학을 배우며 우리 고유의 자연철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난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살아왔던 한국의 전통적인 삶과 문화가 바로 이런 자연철학 사상에 바탕을 둔 친환경적인 삶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은 우리 형제들이 싸울 때 잘못했다거나 틀렸다고 혼내시기보다는 ‘자연 스럽지 못하게 그게 뭐냐, 순리대로 살아야지’ 라고 타이르셨다. 폐쇄적인 대규모의 중국 건축과는 달리 우리 한옥 건축양식은 작은 방들과 마당문화 등, 자연을 향해 열린 구조도 다 자연을 존중하고 가까이 하려는 노력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 풍수지리설이 성행했던 것도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름에 튀기거나 굽는 등 과도한 열처리로 고유의 영양소를 파괴하고 색깔과 향기를 훼손시키면서 달고 기름지게 만드는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음식과는 달리 우리 음식은 신선한 야채나 콩, 나물을 주로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나물로 무쳐먹었다. 또 가공을 하더라도 미량영양소와 식이섬유를 없애기위해 분리와 정제를 주로하는 서양과는 달리 미생물의 작용으로 콩과 채소를 통째로 자연스럽게 발효시켜 영양과 보존성을 높인 장류음식과 김치류가 중심이 되었다.
우리의 이러한 한국적 전통적인 삶의 철학, 즉 ‘한사상’이 바로 자연을 존중하는 자연 철학적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1년이 거의 다 되어 첫 아이의 출산일이 다가오자 우린 기숙사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후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나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원래 식품가공 분야에서 환경공학 분야인 ‘알콜증류폐액을 재활용한 생균사료효모 생산’으로 바꿨다. 2년 정도 다녀야 하는 어학코스나 각종 졸업시험도 독학으로 바로 응시해 건너뛰었다.
또한 매일 열심히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연구한 결과 여러 독일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가톨릭 장학금을 받아 3년 도 안돼 디플롬(석사학위)과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89년 1학기부터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환경
문제에 눈을 뜨게 된 나는 1998년 김수환 추기경님으로부터 천주교 환경상을 받고 나서 그날 밤 자다가 꿈을 꾸다 깬 뒤 영성적 체험을 하고나서 오늘날까지 문화를 통한 환경운동을 해오게 되었다.
건강한 한식과 문제점환경은 건강한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우선 우리의 먹을거리 문화를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적 세계화로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 국적의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전통 식단을 밀어내고 식탁을 점령해버렸다. 이 때문에 성인들은 현대병으로, 아이들은 아토피와 소아비만, 당뇨 등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현대병에서 해방되려면 우리가 다시 전통적인 식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과학자들은 세계적으로 몸에 좋다고 소문난 유럽의 지중해 음식보다 우리의 전통 음식이 참살이에 한 수 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 바그너 할아버지
미국의 건강전문잡지 「헬스」는 한국의 김치, 일본의 낫토를 비롯한 콩 발효식품, 인도의 렌틸콩(말린 콩), 스페인의 올리브유, 그리스의 요구르트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전통음식이 특별하게 좋은 식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치는 물론이고 콩 식품이 2가지나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콩의 원산지이자 발효음식 왕국으로 두장문화를 꽃피웠으며,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그러니 콩으로 만드는 된장, 청국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우리 전통식품이다. 우리 민족은 탄수화물은 쌀과 보리 등의 곡류를 중심으로 섭취하고, 단백질은 콩에서 섭취하는 두장문화권에 속한다. 또한 각종 비타민이풍부한 김치를 비롯해 다양한 침채류 반찬을 함께 먹는다.
그러나 소금은 권장량의 2배 이상이나 섭취해 너무 많지만 마그네슘은 섬유질, 철분과 함께 크게 부족한 실정다. 이미 언급했듯이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가공해 칼로리 외에는 영양소가 거의 없는 백미, 흰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라면 등, 식용유에 튀긴 음식들을 많이 먹어 장건강이 악화돼 40대 대장암 세계1위를 기록했고 비만, 당뇨, 고혈압 등 대사증후군이 만연되었다. 더구나 태운 음식과 알코올 섭취도 과도하며, 아침밥을 굶거나 외식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원룸에 사는 대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대충 외식을 하거나 마트푸드로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젊은이들의 정신질환과 성인병의 원인이다.
이러한 건강위험을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쌀밥 대신 현미잡곡밥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현미는 식이섬유가 많아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미네랄, 비타민, 효소, 필수지방산이 함유된 지방질이 많아 맛이 더 고소하다.
만일, 현미가 거칠어서 먹기 어려울 때는 오분도미와 찹쌀현미를 2대 1로 섞어서 밥을 지으면 좋다. 오분도미는 다섯번 깍은 쌀로 씨눈이 달려있다. 쌀의 경우 미네랄, 비타민 ,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소의 3분의 2가 씨눈에 들어있다. 이렇게 만든 밥은 맛도 좋아 아이들이 선호한다. 필자는 교내 매점에 건의해서 이렇게 지은 밥으로 만든 주먹밥을 팔도록 했는데 학생들에게 큰 인기가 있어서 햄버거보다도 더 잘 팔렸다. 특히 아침을 못먹는 학생들에게 영양을 공급해 집중력 등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건강을 노리는 각종 흰쌀, 흰밀가루, 흰설탕, 흰소금, 흰조미료등 오백 식품과 정제 식용유로 제조한 가공식품의 건강위협에서 벗어나 건강한 식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식재료에 관련된 건강과학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하루 하루의 식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자연식단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가정에서 가급적 한국식 식단으로 음식을 준비하되 현미잡곡밥, 과일, 물 등을 더 많이 섭취하고 외식을 줄여야 한다. 지나친 소금 섭취는 위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국이나 찌개, 칼국수 등 소금 함량이 높은 음식은 국물을 다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짠 젓갈도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지금도 100세가 넘게 건강하게 사셨던 바그너 할아버지의 녹색 식탁이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