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냉철함'과 '공감'

정지우 승인 2023.11.18 15:54 의견 0
정지우변호사,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정지우 칼럼] <냉철함과 공감>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 양대산맥은 '냉철함'과 '공감'이 아닐까 싶다. 두 가지는 가장 다르다고 할 정도로 반대되는 능력이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했을 때 동시에 쥐게 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두 가지 능력 모두 우리의 정신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 가장 정확하게 발현되는 능력 같기 때문이다.

냉철함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는 두 말 할 필요 없을 정도이다. 냉철함은 두 아이를 가진 사람이, 한 아이가 눈 앞에서 죽더라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다른 한 아이를 안고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에서 주저앉지 않고 무엇을 해야할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자기가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모든 요소를 고려하는 직관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 10초에 1점 차이로 이기는 농구선수나 천재일우의 순간을 붙잡는 도박꾼이나 일생 일대의 위기 속에서도 결국 바늘 구멍 같은 출구를 찾는 사람의 능력은 이런 초인적인 냉철함과 관련 있다. 선불교에서 깨달은 자가 한 순간의 통찰력으로 단 하나의 제스쳐로 진리를 관통하는 그런 순간, 그는 투명하게 깨어 있고, 누구보다 냉철하다. 인생의 여러 순간들, 거의 상시적인 위기라 할 만한 여러 고비나 고난 속에서 가장 정확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이런 냉철함이다.

그러나 냉철하다는 것은 단순히 '도구적 이성'만을 발달시킨 상태는 아닐 듯하다. 일종의 사이코패스처럼 고도로 특정 방향으로의 이성만 발달할 경우, 오히려 복합적인 판단력이나 통찰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다른 인간'이라고 한다면, 혹은 달리 말해 인간에게 가장 결정적인 환경이 '타인'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최고도의 냉철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최선의 판단을 한다는 것은 혼자 사막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무수한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가장 적절한 결정을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냉철한 사람은 가장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성을 고도의 공감능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 발판을 딛고 냉철함의 대지 위로 올라설 수 있는 것이다.

법적 분쟁은 언제나 차갑고 기계적인 논쟁의 영역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왜 당사자가 당시 그런 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공감능력이 매우 깊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 법률의 근간인 헌법들은 온갖 인간의 감성적인 권리들(기본권)로 뒤덮여 있다. 기본권은 냉철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다. 인간 삶을 고도로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권리들인 것이다. 그래서 법의 정점에도 사실은 따뜻함과 차가움이 함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성전의 장사치들의 좌판을 뒤엎고 채찍질을 할 때, 그는 가장 냉철한 판단력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지만, 그때야말로 그들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냉철함과 공감은 반대되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최고의 능력이 되는 최고의 짝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을 지닌 사람이 다른 한 쪽을 잃는 게 아니라, 사실 가장 잘 길러진 공감능력은 우리를 가장 정확한 냉철함으로 인도하고, 가장 잘 연마된 냉철함은 그 속에 가장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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