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남명희’의 단편소설집 <자밀>

이만주 승인 2023.11.18 16:49 의견 0
이만주 문예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Book Review 4.... ‘남명희’의 단편소설집 <자밀>

소설가 남명희 선생님께,

보내주신 <자밀>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밀>이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남자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이군요. 어떻든, 처형 수 분 전에 사형집행 정지명령서를 갖은 특사가 달려와 도스토예프스키가 풀려나듯, 자밀이 한국에서 추방될 다음날, 애인인 한국여인이 달려가 관계당국에 둘이 곧 결혼할 것이라고 알려 그가 추방대기소에서 풀려났으면 하네요. 그러나 막상 자밀과의 결혼은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등대 남자'와 '등대 여자'가 결혼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여자와라면 등대지기 1년 정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작가'와 '만곡족 여인'도 결혼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읽으니 일부 구간만 해본 러시아 횡단기차여행을 다시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입니다.

픽션을 읽고 주인공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저 자신이 그만큼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는 얘기이겠습니다.

'그 종탑에 종이 있었을까'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습니다. 작품 '자밀'이 어찌 이주노동자들만의 얘기이겠습니까? 더 근본적으로는 힘들고 소외된 인생에 대한 천착이자 따뜻한 조명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상대적으로 얼마나 혜택 받은 인생들인지요?

'알아서 하라고 해서'와 '하보이곶의 영혼'은 놀랍게도 샤머니즘의 세계를 다루셨습니다. 발상이 특이하고 재미있습니다. 더욱이 '하보이곶의 영혼'은 시샘이 나는, 가히 표본적인 미니픽션입니다.

처음에는, 책을 보내준 사람에 대한 예의상, 한편으론 러시아, 그리스,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한 적이 있기에, 단편 '이콘을 찾아서' 한 편 읽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다양한 소재와 아름다운 표현력에 매료되어 다음 8월에 해남 땅끝 여행 가서 읽으려고 남겨둔 단편 몇 작품 빼놓고는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덕택에 무덥고 지리한 장마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를 알은 지 2년여의 세월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내는 데 필요충분한 시간은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술에 취해 방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그는 내가 기대하고 믿었던 사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하는 표현은 섬뜩합니다.

자귀나무의 "화사한 꽃술은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산제비나비나 풍뎅이들이 먹이를 찾을 수 있게 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되어주기도 해요"란 글, 참 아름답습니다.

이 편지를 쓰느라 다시 들춰보니 한 편, 한 편이 어찌 그리 모두 완벽한지요? 새삼 놀랐습니다.

한국현대문학에 내려오는 전통의 하나인 자조(自嘲)와 열패(劣敗) 대신, 남 선생님의 작품들은 힘든 삶을 다루면서도 결국에는 승리와 환희의 문학이기에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늘 건강, 건필하시기를,

2023 구림에

이만주 올림

*남명희 선생은 금융기관 근무를 비롯하여 여러 인생역정을 거치신 남자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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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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