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오늘부로 회사를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동생은 내게 "루피처럼 혼자서 모험을 떠나네."하고 말했다. 만화 <원피스>는 루피가 돗단배를 타고 홀로 여행을 떠나며 시작한다.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여동생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개업을 한다고 하면, 주변의 변호사들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랑 같이 하세요?"하고 물어본다. 혼자 한다고 하면, 대개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인다. 혼자 시작하는 게 두렵거나 무섭지 않느냐, 로펌에 있다가 홀로 서는 게 외롭지 않겠느냐, 그런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루피'를 생각하면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열 다섯살 때부터, 루피처럼 홀로 저 바다로 떠나는 게 꿈이었으니 말이다.
루피는 섬들을 여행하며 하나 둘, 동료를 만난다. 마을 사람들이나 강아지를 구해주기도 한다. 사실, 내게도 저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섬과 마을, 사람들이 있다. 홀로 외롭게 황야에 남겨진 것이 아니라, 사실 나는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저 세계에는 멋진 동료들이 있고, 마을마다, 동네마다 찾아가서 만날 사람들이 있으며, 또 내게 도와야 할 누군가도 있다. 내가 이렇게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또 한 시절이 끝났구나, 싶다. 매일 오갔던 테헤란로, 어느덧 익숙해졌던 로펌 속 나의 방, 새로 만나고 떠나간 동료들, 점심을 먹으러 나서던 골목과 산책을 갔던 언덕, 필사적으로 책을 읽던 출퇴근길,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지나간 시절'의 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참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어떻게 보면 지옥같은 열차에 실려 다니는 것만으로도 매일 지쳐 돌아오던 날이었는데,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을 두고 떠나는 루피처럼, 나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매일이 '출발할 준비'였다. 매일 출퇴근 길에서, 홀로 사업을 하고, 인생을 뚫고 나가며, 관계를 쌓는 기술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회사에서도 필사적으로 일을 배웠다. 수많은 사건과 일들을 처리하면서, 그 모든 날들이 나의 자산과 능력이 되길 바랐다.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책을 내고, 로스쿨에 들어가고, 법을 공부할 때, 나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홀로 설 수 있는 능력, 홀로 타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나는 그것을 위해 견디고 살아냈다.
루피는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매일 훈련을 받고 갖은 애를 쓰며 항해를 떠날 능력을 쌓는다. 그렇게 바다로 떠난 뒤에는, 부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거나, 악당에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자신의 능력으로 도와주려 한다. 때론 터무니 없어 보이지만, 그는 점점 성장하면서 결국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아가 동료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더 근사한 일들을 해낸다. 나도 이제 떠난다. 그리고 또 동료들을 얻고, 더 성장할 것이다. 그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해낼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응원, 도움을 얻었다. 그 모든 마음이 한 동안, 이를테면, 첫 마을에 이를 때까지의 고생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내가 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줄 것이고, 내가 쌓은 만큼 또 세상에 풀어낼 것이다. 삶은 그렇게 매번, 또 다시 시작된다. 당신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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