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백제가야금연주단과 백제5악사의 부활, <향연>

이만주 승인 2023.12.09 09:57 | 최종 수정 2023.12.09 10:39 의견 0
이만주 문예비평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백제가야금연주단과 백제5악사의 부활, <향연> /이만주

복원재현된 ‘백제금동대향로’ 속, 5악사의 5악기를 사용하여 국악 연주를 성공시킨 것은 올해 우리 문화계의 작은 사건이었다. 아니 쾌거였다.

지난 11월 4일 오후 3시, 이수희 예술감독이 이끄는 백제가야금연주단은 백제금동대향로 발견 30주년을 기념하여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국립부여박물관 사비마루 공연장에서 가야금 합주로 음악회를 열면서 후반부에 ‘향로의 꿈’을 비롯하여 창작한 네 곡을 백제5악기로 연주하여 청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한국의 궁극적인 긍지는 한글과 춤과 국악이다. 우주의 온갖 소리와 가락을 담고 있는 국악은 우리의 자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악은 홀대받아왔다. 따라서 어느 틈엔가 한국인의 귀는 온통 서양인의 귀로 바뀌고 말았다. 한 국가에서 전통에 대한 공감대가 흐려지면 국가의 정체성도 사라질 수 있다.

일본 전통 악기인 고토와 중국의 고쟁을 배운 후, 한국의 가야금을 선택한 한 외국인은 “가야금은 그 자체로도 중국이나 일본 악기와는 다른 독특한 리듬을 만들 수 있는 데다,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소리를 통해 ‘한과 흥’ 등 한국의 고유한 정서를 표현하는 맛이 있다”고 했다.

국악과 양악에 두루 통달한 이수희 예술감독은 일찍이 사명감을 갖고 2007년 '백제가야금연주단'을 창단하여 국악의 계승과 더불어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에 앞장섰다. 그런 결과로 백제가야금연주단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연주를 하며 한국 국악의 빼어난 예술성을 대외에 과시했다.

한류의 큰길을 낸 K-Pop의 공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K-Pop이란 한 세대 전, 미국의 보컬 그룹들을 모방한 점이 없지 않다. 오늘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한류는 좀 더 한국적인 것이어야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 국악은 진정한 한류의 정수라 할 수 있고 그 대표적인 한 예가 가야금연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2023년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우선 1360여년 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의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의 급박했던 순간의 현장으로 시계추를 돌려본다.

부소산에서 이어지는 나성의 동문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는 백제 왕실의 사찰이 있었다. 나당연합군이 사찰로 들이닥치기 전, 숨가쁜 상황에서 한 스님은 약탈당할 것이 뻔한 금동대향로를 천으로 곱게 싸서 나무 상자 안에 넣은 후, 흙 속에 묻었다(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상상임). 대향로는 진흙 속에서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1,400년에 가까운 긴 잠을 잤다.

그리고는 1993년 12월 12일 밤 9시. 능산리 고분군 주차장 공사장에서 긴 잠을 깨고 세상에 모습을 다시 드러내었다. 1,4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백제인이 꿈꾸었던 이상향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도교와 불교가 만난 백제의 우주. 마치 용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떠받들고 하늘을 오르는 것 같은 모습. 높이 61.8cm, 무게 11.85kg. 중국이나 주변 국가에서 발견되는 20cm 크기의 향로에 비해 3배나 되는 대형 향로. 74개의 산과 봉우리, 6그루의 나무와 12곳의 바위, 산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을 비롯하여 잔잔한 물결이 이는 물가의 풍경. 86두의 사람과 동물 얼굴, 12개의 연기구멍. 이 같은 금동대향로의 조형양식은 이제껏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백제인들의 빼어난 예술성과 뛰어난 공예기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 수많은 산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과 기묘한 모습의 동물들. 춤을 추듯 노니는 새들. 그들 모두를 이끄는 듯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대향로 뚜껑 윗부분의 5악사. 그들의 각기 다른 5악기가 국악인들에게는 예사롭지 않았다. 따라서 2011년부터 대향로 속, 백제 5악기 복원재현의 시도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성공하는 듯 하다가는 중단되곤 했다.

부여 출신의 이수희 예술감독은 반드시 백제5악기로 국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녀의 생각은 사명감이 되어 2022년 동료 국악인들과 국악기장(匠)들을 독려했다. 많은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그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향로 속의 배소(排簫), 백제금(琴), 백제삼현(三絃), 북(鼓),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는 횡적과 달리 오른손을 위, 왼손을 아래로 두고 세로로 잡고 부는 종적(縱笛), 복원재현에 성공한 것이다.

전통예술도 현대의 경향을 따라야 하는 법. 이번 춤과, 노래, 양악기가 어우러진 음악 콘서트 <향연> 후반부에서는 백제가야금연주단 단원들(배소:김연주, 백제금:김민아, 백제삼현:최정화, 북:이소희, 종적:이운영)이 백제5악기로 국악창작곡인 함현상 작곡의 ‘백제의 아침’과 ‘From the West’, 이국도 작곡의 ‘백제 5악사 아리랑’, 이수희 자신이 직접 작곡한 '향로의 꿈' 네 곡을 연주했다.

특히 ‘향로의 꿈’은 이번 <향연>의 하일라이트였다. “꿈을 꾸는 대향로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대향로가 잠을 깨는 것을 묘사한 듯”한 ‘향로의 꿈’을 들으면 융성했던 백제의 영화(榮華)와 망국(亡國)의 슬픔이 교차되면서 전체적으로 애잔한 느낌이 다가온다. 곡 자체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백제문화의 철학을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사비의 늦가을 오후. 백제 의상을 입은 연꽃송이 같은 연주단원들의 헤어 스타일도 대향로 속, 5악사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따랐다. 뒤로 크게 쪽을 지은데다 한쪽으로 똬리를 만들어 파격적인 비대칭(asymmetry)의 미를 살린 헤어 스타일이 멋들어지면서 우아함을 더했다.

대향로 속, 백제 5악기, 5악사의 부활은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명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은 “한국은 문화를 창조, 산출하여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라고 했다. 세계가 진정한 한류의 정수에 귀 기울이는 날이 오고 있다. 세계가 우리 가락과 장단에 춤을 추는 날이 올 것이다.

*** 이후, 12월 8일, 이수희 예술감독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수여하는 '2023년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음악부문)'을 수상했다.

[사진 일부: 백제가야금연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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