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관계 맺기의 방식

정지우 승인 2023.12.16 07:33 의견 0
정지우 변호사, 작가, 문화평론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정지우 동서남북] <관계 맺기의 방식>

아마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 중 하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가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내가 청년 시절 원했던 사람들은 아주 명료했다. 그건 흔히 지성인이나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가령, 나는 알베르 카뮈가 살았던 프랑스나 어느 시절 살롱 문화 같은 걸 동경했다. 지성인들과 세상의 중심에서 인생과 사회를 고민하는 어떤 심오한 관계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내 머릿속에서만 있었던 그 기묘한 이상은 사실 말 그대로 이상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세상에 훌륭한 지식인이나 학자, 문인은 많겠지만, 사실 나는 몇몇 경험들을 통해 그런 만남이 꼭 이상과 같지는 않다는 걸 깨달은 면이 있다. 만약 '지성'을 나누고 싶다면, 사실 책으로 나누는 게 가장 심오하고 내 취향에 맞게 찾아갈 수 있다.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란, 부수적인 것들이 훨씬 중요하다. 농담, 잡다한 관심사, 고민의 지평, 생활수준, 꿈, 희망, 미래에 대한 기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잘 얽혀서 어우러지느냐가 더 즐겁고 좋은 관계를 만든다.

단적으로, 내가 당장 라캉에 대해 깊은 지성적인 쾌감을 느끼고 싶으면, 알렌카 주판치치나 백상현의 책을 읽으면 되지, 애꿎은 사람 앉혀놓고 토론을 나눌 필요는 없다. 사람을 만나서는, 설령 라캉에 대해 떠들더라도, 약간 비약적으로, 농담하듯이, 우스개소리하듯 이야기하는 게 오히려 더 재미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한 관계 맺기의 방식은 과거 팟캐스트 하던 시절의 방식이었다. 다양한 게스트들을 초대해서, 다양한 주제로 나름대로 깊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 '방송'이라는 형식이 주는 힘이 아니었나 싶다.

사적인 대화이면서도 동시에 공적인 발화이고, 내 앞에 관중이 있고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기에 약간의 자기 과시나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고, 또 사적인 영역에서의 농담과 즐거움이 뒤섞여 있는, 그런 형태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근래에도 김풍 작가와 했던 방송이라든지, 김정주, 김민섭, 편성준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랑 했었던 여러 형태의 대담 겸 방송의 형태가 꽤나 즐거웠던 '관계 맺기'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은 스스로 방송을 꾸릴 만큼의 여력은 없지만, 그런 즐거움의 기억들을 잘 간직하면서, 조금씩 '즐거운 기회들'은 만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내가 최근 몇 년간 많이 맺어왔던 또 다른 관계의 방식 하나는, 글쓰기 모임이나 독서 모임을 꾸리는 것이다. 사실, 이 경우에는 주최자의 입장에서 약간의 일방적인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그 자체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쌍방향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즐겁지 않을까 싶고, 나름 그런 방향으로 노력도 하게 된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던 분들과 '글쓰기 동료'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는다든지, 같이 커뮤니티 모임을 꾸려 본다든지, 그런 일련의 '관계 맺기'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요즘에는 직장 등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보다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싶은 바람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적당한 인맥, 때론 도움을 주는 지인, 느슨하게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 이상으로 뭔가 더 협업을 하거나, 일명 '콜라보'를 하면서 더 '즐거운 관계'가 될 길은 없나를 고민하곤 한다.

그럴 여지가 있으면, 그럴 기회들을 만들어 보려고도 한다. 인터뷰 프로젝트 같은 것도 그런 일환이다. 물론, 한창 돈 벌고 육아하고 대출금 갚아야 하는 아빠이자 남편이 그런 걸 할 여력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들이 약간 실속 없는 고민처럼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결국 삶이란, 처음으로 돌아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가 핵심이 아닌가 싶어서다.

결국 삶이란, 즐거운 관계, 좋은 관계,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방식의 관계, 내가 가장 마음에 가장 어울리는 바로 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그 관계의 첫번째는 아마 가족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가족끼리 먼저 즐거운 관계의 파티를 열 줄 알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인생의 다가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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