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비평가는 인용을 할 수 있다>
최근 한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에 대한 비평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비평에 소설 인용하는 것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는 칼럼을 읽었다. 그에 따라, 결국 비평이 실리기로 했던 책은 해당 글만이 제외된 채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실은 진위를 따져봐야 알겠지만, 칼럼 내용이 진실이라면, 저작권법을 다루는 나의 입장에서는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아무리 내가 쓴 글의 주인이 나라고 하더라도, 내가 나의 글에 대한 논평까지 마음대로 전부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작권법 제28조는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타인의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비평글이 공정한 관행을 위배했다거나,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인용했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없었다면, 원글의 작가가 인용을 '거부'해도, 법적으로 비평가는 인용을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우리 출판계 전반에서 문제되는 것이기 하다.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의 목적이 있다면, 타인의 글을 인용할 때 모두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글의 저작권자와 연락하기 힘든 경우에는 그 글을 연구하거나 비평할 수도 없다는 뜻이 된다. 저작권법에서 '인용'을 가능하게 규정한 이유는 다양한 의견, 해석, 비평, 비판, 연구 등이 문화가 풍요롭게 발전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나의 글이 소중하다고 하여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전혀 인용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저작자들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매우 폐쇄적인 문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가령, 어떤 영화나 책, 만화 등을 그 저작권자 허락 없이 비평할 수 없다면, 모두가 '자기 할 말만' 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아무도 타인의 작품에 대해 '칭찬' 말고는 구체적인 리뷰도, 평가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자가 '공표'를 하였다면, 즉 세상에 내놓았다면, 그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평가, 비평, 연구할 권리를 허락해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 보호는 매우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보호하면 문화의 자유로운 교류와 그로 인한 발전도 치명적으로 막아버릴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오해, 오독, 다양한 해석, 비판, 비평, 여러 관점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나의 작품이 나의 의도와 다르게 읽힌다면, 그에 대해 작가는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원래 그런 식의 논쟁을 통해 문화는 발전하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가 전략적으로 작가들에게 우호적인 글만을 선별하여 출판하는 것이 판매나 기획에 맞다고 생각하여, 특정 비평을 걸러낼 수는 있다. 그러나 비평에 원작가가 '인용불허'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저작권법은 규정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 문화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문화는 역동하며 나아가는 것이고, 때론 문화계 전체가 그런 역동성을 지지할 필요도 있다. 온당한 비판 등이 사리자고, 주례식 비평과 칭찬만이 남는 문화는 그 발전 가능성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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