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김대웅 승인 2024.03.02 12:10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야생동물들의 생태를 다룬 TV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자나 늑대, 들개 등은 서로 협동해서 사냥감을 잡는다. 사자 무리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흩어져서 사냥할 동물을 포위함으로써 사냥에 성공한다. 늑대나 들개는 무리를 지어 빠르게 도망치는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줄기차게 뒤쫒는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빠르게 사냥감을 뒤쫒는 선두가 지치면 뒤따르던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선두로 나선다. 말하자면 협동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냥감을 포획해서 잡아먹을 때는 조금의 양보도 없다. 서로 밀치고 으르렁거리며 저마다 좋은 위치에서 다른 녀석들보다 많이 먹으려고 한다. 어미와 새끼도 먹잇감을 놓고 싸우고, 수컷과 암컷도 싸우지만 힘센 수컷이 먹잇감을 먼저 차지한다.

그러고 보면 동물들에게는 양보, 희생, 헌신과 같은 이타적인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먹잇감을 사냥할 때 협동하는 것은 생존을 좌우하는 먹이 확보를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며 어미가 어린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 종(種)의 번식을 위한 모성본능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어떡해서든 생존하고 번식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라도 무리의 다른 개체들이 어찌되든 자기부터 살려고 한다. 살아야 번식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다른 개체보다 자신이 생존과 번식에 우선하는 것은 그러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다.

영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1976)에서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다.”라고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정의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유전자의 ‘자기복제’가 최상의 가치라는 것이다.

도킨스의 생물학적 정의, 즉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 행동뿐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를 좀 더 넓게 해석하면 생존과 번식에서 자기를 다른 개체보다 이롭게 하고 유리하게 하려는 행동은 모두 이기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김대웅]

“생물 개체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도킨스의 주장을 담은 <이기적 유전자> 초판 표지

우리 인간도 당연히 생명체이며 동물이다. 동물의 분류에서 포유강(綱)-영장목(目)-사람과(科)-사람속(屬)-사람종(種)으로 분류되는 동물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이기적 유전자만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만 지니고 있었다면, 다른 고등동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만물의 영장으로 지구를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인간만 지닌 특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성 또는 인간만의 본성은 무엇일까?

저명한 생물학자인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피터 터친(Peter Turchin) 교수는 그의 저서 <초협력사회>(Ultrasociety)에서 그것은 낯선 사람들과도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앞에서 설명했듯이 무리지어 사는 동물들은 그 행동이 본능이라고 하더라도 먹잇감을 공격할 때는 서로 협력한다. 개미나 꿀벌 등도 서로 협력함으로써 집단의 생존을 지키고 이어간다. 말하자면 일부 동물들에게도 사회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물의 사회성, 즉 협력은 자기 무리, 즉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개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무리, 다른 개체가 접근하면 적대감을 드러내며 즉각적으로 공격하는 등, 철저히 배타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작은 마을, 도시, 국가, 또는 그 이상의 큰 무리를 짓고 낯선 사람들과도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고 터친 교수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을 ‘초협력사회(超協力社會)’(Ultrasociety)라고 했다. 하기는 협력이나 협동은 인류만의 특성이며 이러한 이타적인 행동이 인류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견해는 터친 교수만의 주장은 아니다. 많은 인류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이 이미 제시한 견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특성인 협력이나 협동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찌 보면 이러한 특성 또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다만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사회성이 있지만 결국 그것도 자기 또는 자기들을 이롭게 하려는 이기적 유전자의 발현이 아닐까?

당연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렇지만 모든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 인간에게는 ‘나’뿐 아니라 남들도 이롭게 하려는 배려, 양보, 희생, 헌신, 봉사와 같은 협동심, 이타심(利他心)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이타적 유전자’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울러 이타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 인류의 먼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에서부터 유전자가 이어져 온 것일까? 아니면 언제부터, 왜, 어떻게 발현하게 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피터 더친 교수는 그의 <초협력사회>에서 비교적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약 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부터 약 20~3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 즉 오늘날 우리들인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수렵채집으로 생존하며 일정한 주거지 없이 이동생활을 했다. 따라서 많아야 수십 명의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자기 무리 안에서 생존을 위한 소규모 협력이 있었을 뿐, 다른 핏줄이나 언어가 다른 낯선 인류의 무리들과 협력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 1만~1만2천 년 전, 인류가 정착생활과 노동력이 집약되는 농경사회(農耕社會)를 열면서 초사회성이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정착생활은 도시를 탄생시켰으며, 더 나아가 씨족-부족-민족이라는 거대한 집단으로 발전했고 마침내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들 거대한 집단은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신전(神殿)을 비롯한 거대한 석조기념물들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끼리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협력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욱 위력을 발휘한 것이 전쟁이라고 터친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집단끼리의 전쟁은 앞서 지적했듯이 ‘나’뿐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생물학적 이기적 유전자의 발현을 넘어서서 ‘파괴적 창조’를 가져오는 문명의 동력이며, 집단 간의 전쟁이나 경쟁은 협력의 규모와 긴밀성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개체 대 개체, 즉 개인과 개인 간에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이기적 유전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대 집단의 경쟁에서는 이타주의 집단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이 전쟁 등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특히 농경사회 이후, 인간끼리의 관계가 집단화되면서 생존을 위해서도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끼리의 협력이 인류진화의 가장 획기적인 요소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이루기 어렵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과 같은 스포츠 종목들은 협동과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단체경기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 단체경기다. 이러한 스포츠 종목들도 우리에게 협동과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이타주의는 곧 이타적 유전자의 발현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이타적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이기적 유전자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 유전자라면, 이타적 유전자는 뛰어난 지능으로 습득한 후천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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