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창평의 추억

이만주 승인 2024.03.02 12:24 의견 0
이만주 문예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창평의 추억> /이만주

재작년 늦가을, 담양군 창평에서였다.

‘글을낳는집’에서 시인 자격으로 문인 레지던시를 하고 있던 나는 서울에 볼일 보러 올라갔다가 다시 귀소하려고 창평에 들렀다. 창평에서 대덕면 용대리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눈썹이 많이 희어지면 습관적으로 하는 머리 염색을 서울에서 안 하고 내려왔다.

창평에는 이발소 몇 개가 같은 길가에 띄엄띄엄 있다. 어찌하다 보니 이발소 같지도 않은, 이발 의자라야 두 개밖에 없는 허름한 이발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손님 없이, 이발소 영감이 이발 의자에 기대앉아 쉬고 있었다.

“염색만 하려고 하는데요.”

“네. 앉으세요.”

그런데 내 머리를 들여다보던 영감이 말했다.

“먼저 이발하실 때 잘못 깎으셨어요. 아저씨는 여자 단발머리처럼 위 양옆이 툭 튀어나오게 깎으면 안 되세요. 위서부터 아래까지 매끄럽게 직선으로 내려와야 해요. 염색하기 전에 제가 좀 다듬어 드릴께요.”

하더니 빗과 가위로 척척 머리를 친다. 보통 숙련된 솜씨가 아니었다.

“염색만 한다고 했어요. 이발하러 온 게 아니어요.”

“네. 알아요. 염색 값만 받을 거예요. 그냥 다듬어드리는 겁니다.”

나는 염색을 마치고 물어보았다.

“영감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요?”

“아니예요. 저 여자예요.”

그제서야 나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바지를 입고, 옷차림새도 머리도 전혀 꾸미지를 않은 그를 남자로 착각했던 것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애들 키우느라 어찌해서 이발을 하다 보니 이제 80을 바라보네요. 여자 혼자 사니 일부러 남자처럼 보이느라 긴 세월 복장도 행동도 남자 행세를 하려고 했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남자로 착각하곤 합니다.”

나는 미안했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말을 이었다.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아들이 공무원을 하고 있어 이제 쉬어도 되요. 하지만 놀면 뭐합니까? 손주들 용돈도 주어야 하고.”

거울을 보니 내 머리가 산뜻하게 다듬어졌고 난 10년쯤 젊어져 있었다. 아무따나 깎는 남자 머리. 그게 그거지만 그는 내 머리를 어떻게 깎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미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은 염색이 8천 원으로 제일 싼 집이라 찾아 들었는데 8천 원만 받겠다는 그에게 기꺼이 만 원을 지불했다.

좀 더 얘기를 나눌 것도 없었지만 “할머니” 부르며 손녀가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발소를 나왔다. 늦가을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길 안쪽으로 들어서면 관광을 위해 일부러 꾸며진 민속촌이 아니라 옛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큰 한옥들과 돌담길, 정감 있는 도랑이 있는 삼지내마을이다. 나는 담양에 있는 동안, 창평에 들를 때면 삼지내마을을 이리저리 거닐곤 했었다.

창평의 추억이다. 이발의 추억이다.

창평 면사무소 [사진=이만주]
창평을 흐르는 도랑 [사진=이만주]

창평의 돌담길 [사진=이만주]
창평의 큰 기와집 [사진=이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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