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개업한 사람의 시간
퇴사를 하고 개업을 한 지 100일 정도 지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대개 회사에서 주는 일을 위주로 하면 되었지만, 개업을 한 사람은 그래선 곤란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일거리를 많이 받으면 바쁘지만, 일거리가 없으면 비교적 여유 있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개업 상태에서의 오늘 하루는 거의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나는 오늘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도 안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나설 수도 있다. 그것은 내일도, 모레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었는데도, 누군가 일을 맡기고 싶어서 줄을 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어떤 식으로든 '비는 날들'은 생긴다. 그런 날들을 어떻게 채우고 보낼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린 일이 되는 것이다.
가령, 어느 하루에는 특별히 상담이나 재판도, 강연도 없다면 그냥 노는 날로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당장 누군가 일을 주지 않는다고 하여, 계속 놀아버리면 계속 노는 날만 늘어난다. 대신 노는 날이 생겼을 때, 무언가 '일'이 올 수 있도록 애쓸 필요가 있다. 하다 못해, 영업이 필요하면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유튜브라도 찍어볼 수 있다. 1년 뒤 출간할 책의 세 장 정도 원고를 미리 써둘 수도 있다.
그래서 개업한 사람의 일은, 말하자면, 언제 차오를지 모를 깜깜한 구멍에 매일 물을 붓는 것과 비슷하다. 물을 매일 붓다보면, 언젠가 물이 차올라 그 위에 뜬 공을 집어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공이 언제 떠오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멍이 깜깜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물은 영영 차오르지 않는다.
회사를 다닐 때는, 어떻게 보면 앉아서 기다리면 되었다. 하라고 하는 일이 있으면 하고, 하라는 일이 없으면 가만히 기다려도 된다. 그래도 월급은 나오고, 그렇게 1년은 회사에서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개업한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백지다. 설령 너무 바쁜 주나 달이 있어도, 그 일들은 과거의 내가 벌려 놓은 일들이다. 과거의 내가 물을 들이 부어두지 않았더라면 있지 않을 날들이다.
지난 100일을 돌아보면, 운 좋게도 몇 가지 일거리들이 내게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일하며 보내는 시간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역시 물을 들이 부으면서 보낸 시간이다. 그렇게 여러 구멍에 물을 부었다 보니, 몇 개의 구멍에서 떠오르는 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할 일을 간단하다. 떠오른 공은 잡고, 아직 공이 떠오르지 않은 곳에는 계속 들이부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개업한 사람의 시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하다. 하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계속 물을 들이붓는 일이고, 그렇게 물을 부어서 떠오른 공들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거나, 시간과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주겠지 하며 있는 건 불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매일 백지인 일정표를 채워나가는 건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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