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담(詩談)] 두꺼비집

박미산 승인 2024.03.30 07:24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의 시담(詩談)] 두꺼비집/ 박미산

이 마을의 내력은 짧다

이북에서 넘어온 어른들이 마을에 들어온 순간 삽시간에 늙어 버렸다

어른들을 바라보던 아이들도 겉늙어버렸다

조로증을 앓는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

대가 끊긴 집에선 토막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수 내린 무당이 방울을 흔든다

방울에 매달려 있던 말이 우수수 쏟아진다

눈을 부릅뜬 무당의 입에서

잎 누런 아이의 말이 투욱 툭 떨어진다

정수리에 퍼붓는 말의 씨앗들

머리를 쥐어뜯는 나에게 무당이 춤을 추며 다가온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애써 쌓은 나의 두꺼비집을 밟아버린 그 아이

허연 버짐이 덕지덕지 낀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뒤져버려! 뒤져버려!

비척거리며 뒤돌아서던 아이의 등에

쉴 새 없이 내리꽂혔던 나의 말

무르고 싶은,

이제 무를 수 없는 씨앗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채문사, 64쪽)

...

(시인의 회상)

밀려오는 피난민들 때문에 화교들과 그들이 가꾸던 밭이나 과수원들이 사라지고

피난민들이 마을을 점령했다.

도화동 남자들은 부두에서 하역 작업 같은 노동을 하러 새벽부터 나갔다.

형편이 좀 나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머지는 아이보기나 미장원, 가발공장, 봉제공장을 다녔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모두 국민학교에 다녔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담임 선생님이 수업 중에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많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뻔뻔하게 학교에 다녔다.

그 당시엔 아이들에게 놀이라는 게 없었다.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거나 고무줄놀이, 사방놀이,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등이 고작이었다.

잘 만들어 놓은 나의 두꺼비집을 늘 부수는 애가 있었다.

허연 버짐이 잔뜩 낀 얼굴로 씩 웃으며 도망가는 그 사내아이 뒤통수에다 대고

나는 늘 죽어버리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정말 죽었다.

그 아이가 죽고 나서 외아들인 그 아이의 부모님은 진혼굿을 했다.

작두에서 내려온 무당은 쪼그리고 앉은 내 앞에 그 아이의 걸음걸이로 와서 그 아이의 슬픈 목소리 그대로 잘 살라고 등을 두드리며 돌아섰다.

난 그 이상한 향과 시끄러운 징 소리, 펄럭이는 무당 옷, 아이의 혼령을 보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나는 그 아이에게 내뱉은 말이 씨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말조심하면서 살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내 말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

***필자 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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