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감성일기] 입체적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이대영
오늘부터 22대 총선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입체적 선량이 많이 당선되기를 바라다.
헌정질서를 뒤흔든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대한민국 공동체는 급속히 파열되며 전이공간에 들어섰다. 이와같은 공공테러가 발생하면 공동체는 찬반으로 나뉘며 전면 충돌한다. 인류학에서는 이를 사회드라마라고 칭한다. 공공테러 이후 공동체는 분리, 전이, 재통합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물론 우린 아직 전이공간에 있다.
탄핵으로 파열이 된 공동체는 분리의례를 거쳐 전이공간으로 이동하는데, 사회가 공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 법조, 문화, 종교, 철학 등 상위 교정집단이 긴급히 재통합을 도모하는데, 아뿔싸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이들 교정집단마저 양분되어 혼돈을 가중 배가시키며 전이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이공간은 무질서하며 기존의 법질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1945년 해방전후의 무법천지를 상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선에도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다수 출몰하여 법질서를 교란한다. 서민은 신호 위반 교통딱지 하나에도 벌벌 떠는데, 큰 범죄로 실형을 받고도 구속되지 않고, 뱃찌만 달면 4년은 너끈히 버티거나, 혹은 더 파렴치한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몰려다니며 표를 달라 궤변을 설파하고 시장을 활보하니 말이다.
심지어 검찰에 의해 도륙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짤마저 등장했다. 그는 도륙을 당한 것이 아니다. 거짓과 위선이라는 비계덩어리가 벗겨진 것이다. 정직과 청렴으로 포장하여 재물과 명예의 살을 실컷 찌우다가 그만 발각된 것이다. 굶주려 빵 한 조각 훔치다가 붙잡혀 억울한 옥살이와 옥받이를 한 것이 아니다. 위정자의 탐욕이 들켜 스스로 옷을 벗은 것이고, 옷에 오래도록 늘러붙었던 위선의 비계껍질까지 뜯겨진 것이다.
이처럼 죄악을 두둔하는 기괴한 수사이자 도덕의 결핍에 의한 비유가 도를 넘으면 요상한 괴물언어가 된다. 괴물의 함성이 요란하다. 범죄에 대한 무감각과 그 범죄자의 호위와 그 호위자의 수호와 그 수호자의 옹호와 그 옹호자의 함성과 응원가가 혼란하다.
죽은 자의 과거를 지키기 위해 산 자의 미래를 파는, 진영논리에 함몰된 평면적 인간들의 성찰없는 말의 성찬이 괴롭다. 자기들만의 정해진 신호체계에 맞추어 레밍처럼 줄서서 따라가는 행위 속에 개인의 없다. 진영적 편향과 역사적 단견과 지독한 정치적 독설만이 난무할 뿐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그림자 평면 인간이라 칭한다. 그들의 오랜 친구는 프로쿠로스테스이다. 늘이고 줄이고가 제멋대로다. 자기 잣대가 곧 법이다. 이들에게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죄인이 권력을 탐하는 나라가 된 것도 다 까닭이 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이들은 나의 범죄는 공익을 위한 공공테러였다고 주장한다. 파렴치하다. 법조문은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해석하면 그만이고, 정 불편하면 언론 등 온갖 여론과 권력을 동원하여 바꾸면 된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 익숙해진 상태이다. 그렇게 사회는 병들고, 급기야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개인의 자존과 미래가 꽂피는 숭고한 미래사회를 위해 입체적 사회, 입체적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입체적 인간은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얻어진 유연한 의식을 바탕으로 미래 환경에 적응하며 충돌할 때와 충돌하지 않을 때를 구별한다. 입체적 인간은 대안없이 비판하지 않으며, 스스로 죄를 옹호하지 않으며, 악을 미워하고 선을 도모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숙고하며, 지속가능한 미래 공동체를 추구한다.
전이공간의 터널을 다 지나고 맞이하게 될 새로운 세상은 공간과 여백이 있는 입체사회가 자리매김하기를.
고로 나는 주인의 도덕을 갖춘 사람을 지지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부디 입체적 성품을 지닌 선량이 많이 당선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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