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성서를 통해 본 권력과 섹스 1)... 에스델 : 숨겨진 여걸

김대웅 승인 2024.03.30 08:09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김대웅]


[김대웅 중구난방] 성서를 통해 본 권력과 섹스 1)

1) 에스델 : 숨겨진 여걸

역사적인 로맨스라 할 수 있는 <에스델서>는 에스델이 아름다움으로 권력(왕비로 간택되었다)에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그 권력을 이용해 그녀 민족의 적이자 남편의 수석 대신인 하만을 몰락시킨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승리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영향력을 이용해 그녀의 동족을 구하고 적을 파멸시킨 것으로 기억된다. 학자들은 에스델과 관련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니면 일어나지 않았는지, 만약 일어났다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이 미스터리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섹스와 권력에 대해 이것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살펴보는 일이다.

‘에스델과 아하수에로의 연회’(Jan Victors, 1640s)


<에스델서>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까지 이르는 127개 지역을 다스리는 왕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로 알려짐)의 궁전에서 대대적인 향연이 열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먹고 마시기를 무려 7일 동안이나 계속한 뒤, 왕은 자신의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손님들에게 과시하려고 손님들 앞에 나오도록 명령한다.

술에 취한 남자들 앞에 나타나기를 절대 원치 않았던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와스디의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신하들이 자리를 뜨자 아하수에로는 그녀와 잠자리를 원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술에 취한 그는 발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와스디는 그의 발기부전을 탓했을 것이고, 그녀의 운명은 단순한 추방보다 더 가혹했을 것이다. 아무튼 와스디가 명령을 거부하자 왕은 격노했으며 대신들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왕에게 “왕비의 행위는 모든 여자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자들이 남편을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왕비의 행동을 들은 페르시아와 메대의 귀부인들은 왕의 신료들에 반발할 것이고, 경멸과 분노가 끝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충고했다(<에스델서> 1장, 18절). 독립성을 보여준 왕비의 행위가 궁정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허약한 가부장제를 무너뜨릴 것을 염려한 왕은 “모든 여자들이 자신의 남편을 지위가 높든 낮든 똑같이 존경하도록 하기 위해서 왕비를 추방했다.” (<에스델서> 1장, 20절)

남편의 지위 때문에 특별한 감시 하에 있는 많은 여성들처럼, 와스디는 자신의 독립을 위해서 커다란 대가를 치른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모범적인 아내”로서 그녀는 엄청나게 높은 기준에 의해서 평가된다. 성경학자 레니타 웸스(Renita Weem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스디의 통치 이야기는 공인으로서 살았던 여성들에게 부과된 수많은 억압과 욕구, 책임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공적인 여성들이 규정된 역할을 벗어났을 때 그녀들이 치르는 대가는 기억에 남게 된다. 낸시 레이건, 로잘린 카터, 엘레노어 루즈벨트-현대 미국 대통령의 아내들-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왕비를 쫓아 낸 뒤 아하수에로는 또 다른 여자를 찾기 시작하고, 왕국의 모든 처녀들 중에서 간택을 하기 위해 성대한 미인 대회를 준비한다. 결국 그는 에스더 -히브리어로 에스델이라는 이름은 ‘숨겨진’ (L'hastir) 이라는 뜻을 암시한다- 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여자를 선택한다. 그녀는 신분을 속이고 왕비로서 그를 섬기기 시작한다. 그 때 왕비의 신분을 눈치채지 못한 왕의 수석 대신 하만은 유대인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삼촌 모르드개의 도움을 받아 자기 민족을 구하고 하만을 제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자신의 목숨을 운명에 맡긴 그녀는 왕과 하만을 연회에 초대한다. 그곳에서 실컷 먹고 마신 뒤 그녀는 왕에게 자신과 자신의 동족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물론 왕도 누군가가 왕비를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에 섬뜩해진다. 왕비를 죽이려 한 사람이 하만이라는 사실을 에스더가 폭로하자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하만과 그의 아들들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진다. 이처럼 ‘에스델서’는 궁중 연회에서 대신들의 손아귀에 있는 한 왕비의 몰락으로 시작하여, 궁중 연회에서 왕비의 손아귀에 있는 대신들의 몰락으로 끝난다.

성서의 기준에서 판단해 볼 때 에스델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몇 가지 단계에서 그녀는 법의 약속, 혹은 최소한 법의 정신을 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고 자신의 민족을 숨겼는데, 추측컨대 모든 면에서 페르시아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자기 민족의 구원이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행동한 것으로 밝혀진다.

비슷한 방식으로, 에스델이라는 여자는 그녀의 전임자인 와스디 만큼 독립적이지도, 다음 편에 이야기할 데릴라만큼 위험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권력에 이르는 방법은 체제를 통해서 남자들과 함께 일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드니 앤 화이트(Sidnie Anne White)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이야기의 전편을 살펴 볼 때 그녀의 행동은 여성의 간교함의 극치를 이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하렘에 있을 때에도 헤개의 환심을 사고, 해개와 모르드개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데, 그 두 사람은 궁중의 일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왕의 마음을 빼앗아 왕비가 되고, 다음에 위험이 닥쳤을 때에는 능수능란하게 그것을 헤쳐 나간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점은 그녀의 온갖 행동에서 드러난 간접성이다. 에스델은 혼자 힘으로 권력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남자들과의 관계 덕분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적인 하만의 파멸도 오로지 왕의 행동과 명령을 통해서만 실행될 수 있었다. 더욱이 하만이 패배한 이유는 그녀를 개인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며, 그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희생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그녀의 삼촌에 의해 구체화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는 희생자로 전락한 것이다. 그의 몰락은 그가 에스델에게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인 왕이 에스델에게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연재할 데릴라와 유딧의 이야기에서 여성의 역할은 훨씬 더 직접적이다. 물론 둘 다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섹스를 도구로 삼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두 사람은 모두 권력있는 남자들의 몰락을 가져온 위험한 여자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남자들은 덕망이 있거나 결백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멸망을 자초하는 장구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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