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성서를 통해 본 권력과 섹스 (2)... 삼손과 데릴라 : 크면 클수록 더 야멸차게 몰락한다

김대웅 승인 2024.04.07 21:44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성서를 통해 본 권력과 섹스 ... 2) 삼손과 데릴라 : 크면 클수록 더 야멸차게 몰락한다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요부는 데릴라일 것이다. 그녀와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과의 관계, 그리고 결국 삼손을 파멸시킨 것은 성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이다. 종교적 교리서로서 성서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만큼 당황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우리는 삼손을 성서에 나오는 심판자의 한 사람으로 확실히 기억하지만 영웅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반영웅(antihero)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이야기에 당황한 나머지, 그것은 역사적 이야기도 민담도 아닌 신화라는 생각을 넌지시 내비쳤다. 삼손의 이름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어인 셰메쉬(SheMeSh)와 연관이 있는 반면에, 데릴라라는 이름은 ‘밤’을 뜻하는 히브리어인 릴라(LiLah)를 상기시킨다. 삼손이라는 태양은 적들의 영토를 불태우지만, 그의 머리카락(아마도 태양의 광선일까?)이 잘리면 그는 눈이 멀고 어둠 속으로 빠진다. 결국 어둠의 끝에서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고 그는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이 이야기가 타오르는 태양이 밤마다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매일 매일의 순환에 대한 의인화된 신화적 설명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비록 꾸준히 성서를 읽고 있지만, 나는 학자도 아닐뿐더러 성서에 관해 단정적인 해석을 내릴 의사도 없다. 하지만 이 책과 관련하여, 나는 그의 오만, 자존심, 철저한 어리석음이 그의 몰락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한 남자를 유혹하고 배신하는 요부의 원형으로서 데릴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녀가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성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실상 모든 해석들은 그녀가 아름답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녀가 블레셋 사람들 (옛날 팔레스타인 남쪽에 살았던 유대인의 라이벌이었다)에 대해 가진 동정심에서 동기가 유발됐는지 모르겠지만, ‘사사기’(The Book of Judges)에서도 역시 그녀가 블레셋 사람이었다는 증거가 나와 있지 않다. 비록 거기에서 그녀가 매춘부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그녀의 동기는 단순히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삼손과 데릴라’(루벤스, 1609)

그러나 후세 사람들에 각인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데릴라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에스델과는 달리 그녀는 아버지나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독립적인 여성으로 보인다. 그녀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희생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관련된 가장 흥미 있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왜 삼손이 기꺼이 희생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비록 삼손이 힘센 남성에 대한 고전적 상징이긴 하지만, 그의 충동적인 자기 파괴는 자신의 육체적 힘보다 훨씬 더 주목할 만하다. 사실상 데릴라의 이름이 ’유혹’과 동의어라면, 삼손의 이름은 아마도 ‘충동적인 성적 위험 부담’과 동의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데릴라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오랫동안 위험한 여성 편력의 경험이 있었다.

삼손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그를 나지르(Nazir ; 옛날 중동 지역 국가의 법정관리)로 봉헌했는데, 나지르의 신분이 되면 어떤 특정 음식과 음료수를 피해야 하고 머리를 자르면 안 된다. 확실히 그것은 성의 절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삼손과 연관된 첫 번째 여자는 그의 부모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블레셋 여자였다.

비록 첫 번째 여자가 데릴라처럼 그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배신한 것은 여러 모로 데릴라와 비슷했다. 어느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뒤 그것을 풀라는 내기를 했다. 하지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그들은 삼손의 신부와 그녀의 가족을 위협해서 답을 알아내려 했다. 그와 데릴라와의 다가올 관계를 암시하는 듯, 그녀는 삼손을 꾸짖으며 소리쳤다. “당신은 나를 미워할 뿐 정말로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울어댔다…… 그녀가 하도 그를 귀찮게 하자 7일째 되는 날 그는 할 수 없이 그녀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곧 수수께끼의 답을 그녀의 동족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삼손의 상처에 더욱 모욕을 준 것은 그녀가 그와 가장 친한 사람과 결혼을 감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삼손의 다음 여자는 가자 출신의 매춘부였다. 비록 그녀가 그를 배신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다시 한번 그의 행동은 자신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동안 가자의 남자들은 아침에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v그들의 계획을 알아챘는지는 모르지만 한밤중에 일어나서 도시의 성문을 어깨에 메고 그곳을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의 행복과 삶이 위협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그에게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매우 똑똑하고 힘이 있기 때문에 스캔들에 휩싸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처럼, 그는 또 다른 성적 모험을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그를 몰락의 길로 이끌게 된다.

매사에 조심성을 상실한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데릴라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가 그녀에게 홀딱 빠지자마자 그의 적인 블레셋 사람들은 그녀에게 접근하여 만일 그녀가 그를 배신하면 수천 개의 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데릴라는 즉시 동의하고 삼손의 거대한 힘의 비밀을 밝히는 데 몰두한다. 데릴라는 세 번에 걸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지만 그는 매번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그를 활줄로 묶으라고 말한다. 다음에는 밧줄로 그를 묶으라고 말한다. 세번째는 그는 사실과 조금 근접하여 그녀에게 그의 머리카락을 7개의 가닥으로 따서 묶으라고 말한다. 매번 그가 잠이 들었을 때 그를 깨워 블레셋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삼손의 양쪽 곁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힘이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속박이나 변화된 성적 역할과 관련된 에로틱한 게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각각의 일화들이 섹스 후 삼손이 잠든 후에 일어나는 행동인 반면에, 성경의 이야기는 데릴라의 관심이 단지 성적인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삼손이 충분히 알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이 공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데릴라가 그를 깨울 때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런 예방책도 쓰지 않았다. 사실상 사랑에 빠진 삼손은 그녀를 따라가 자멸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눈치 챈 데릴라는 그가 자신을 놀리고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힘센 남자를 꾸짖었다. 마치 당신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신 자신을 죽음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청나게 센 힘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대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방어할 행동을 취하지도 않고 그를 배신할 음모를 꾸민 것에 대해 나무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가 그녀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엄청난 힘에 대한 진짜 비밀을 밝히고 만다. 이것은 마치 그가 블레셋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가르쳐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블레셋인들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는 데릴라에게 말한다. “만약 나의 머리카락을 자르면 나의 힘들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약해질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데릴라는 그가 자신에게 ”모든 비밀“을 말했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린다. 한 바탕 질펀하게 섹스를 즐긴 뒤 그는 그녀의 무릎 위에서 잠이 들었다. 바로 이때 그녀는 블레셋인을 불러들여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했다.

이 장면은 <삼손과 데릴라>라는 제목으로 루벤스(1577-1640)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 아마도 하녀인 듯한 또 다른 여자가 데릴라 뒤에서 삼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나이를 고려해보면 삼손을 낳았고 그의 머리카락에 담긴 힘의 비밀을 처음 간직했던 그의 어머니가 연상된다. 게다가 이 그림은 섹스를 연상시킨다. 데릴라는 젖가슴을 노출시킨 채 머라카락을 자르는 사람 앞에서 몸을 가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왼손은 그녀가 배신한 애인의 등 위에 거의 사랑스럽게 올려져 있다. 삼손은 아직 완전히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은 채 무기력하게 방어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감히 자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그의 머리카락은 데릴라를 사랑한 대가로 이윽고 사라질 것이다.

머리카락이 잘려, 하나님께 봉헌된 나지르로서의 서약을 어긴 삼손은 더 이상 초자연적인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잡아다 눈을 멀게 하고 결박한 뒤 맷돌을 돌리게 한다. 결국 그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면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다시 힘을 갖게 된다. 자기 파멸의 마지막 행위로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을 데려다 마음껏 조롱했던 사원의 중앙 기둥을 붙잡고 무너뜨리자, 적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파멸당하고 만다.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는 어느 면에서 보나 성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에 약한 엄청난 힘을 가진 영웅의 이야기는 종교적 경전의 표준적인 재료로 삼기는 거의 힘들다. 이러한 모습에 괴로워한 후세의 해석자들은 삼손이 저지른 가장 큰 죄는 인간의 자만심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의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은 그는 멸망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인간적인 측면에서 삼손은 그의 육체적 힘이 그를 진정한 남자로 만든다고 믿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자에 대한 이해 부족은 길이 역사에 남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힘이 승리를 가져다주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의 정치적 힘이 비난을 면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정부 관료처럼, 삼손은 자신의 힘이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그가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저작권자 ⓒ 더코리아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