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동서남북] '둔감'함으로 삶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정지우 승인 2024.04.20 06:17 의견 0
정지우 변호사, 작가, 문화평론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정지우 동서남북] '둔감'함으로 삶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20대에는 한없이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다. 예민하다는 것은 그만큼 감수성과 창조성이 뛰어나고, 통찰력 있게 많은 것들을 포착할 수 있다는 의미라 믿었다. 그러나 요즘 나의 목표는 오히려 둔감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나치게 예민하면, 그만큼 스트레스와 걱정이 많고, 앞으로 나아갈 힘도 약해진다. 삶을 헤치고 나아가려면, 강한 심지가, 어느 정도의 둔감함이 필요하다.

예민함은 길을 걸으며 계속하여 멈춰서고, 걸려 넘어지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일은 확실히 세상의 풍요로움을 받아들이게 한다. 잠시 서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세상의 음악을 듣게 한다. 그러나 계속 멈추다 보면, 도착해야 할 시간에 늦고,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만약 가야할 길이 있다면, 잠시 예민함의 살갗을 감추고, 단단한, 둔감함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내가 꺼낸 말 한 마디, 상대방이 나에게 보낸 눈빛 하나, 타인들이 나에게 던진 댓글 한 줄, 나도 모르게 신경쓰는 타인들의 시선 같은 것들에 일일이 예민하게 걸려 넘어지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진다. 때로는 그저 나의 마음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악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나의 선한 마음을 믿고 상대방도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을 믿어야 한다. 당신과 나의 관계를 믿고 나가야 한다. 내가 나에게 진솔하다면, 나의 말과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때로는 타인의 말과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그런 것들이 없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삶에 필요한 추진력들을 갖고 달려가길 연습하면서, 내리게 되는 결론은 '예민'하되 그 예민함을 넘어서는 '둔감'함으로 삶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둔감함이 아니라, 알고 눈치채고 느끼되, 그 느낌을 넘어서서 더 중요한 것을 믿고 삶의 방향을 잡는 힘을 지녀야 한다.

한없이 예민해지기만 하면, 결국 삶은 타인들에게 휘둘리다가 진퇴양난에 빠져 끝나버리고 만다. 멈춰선 채로 온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 반대로, 한없이 둔감해지기만 하다면, 온전한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도를 그려가야 하는 게 삶이라면, 그 또한 길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기민하게 알아차리되, 그것을 넘어 나아가야 할 길을 걷는 둔탁함을 지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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