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詩談)] 시인

박미산 승인 2024.04.27 13:04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詩談)] 시인

인천 창영국민학교 앞

손을 꼭 잡은 남매

여자아이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고

오빠는 구두통을 메고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흙먼지 뒤집어쓴 구두를

지전으로 바꾸면서

세상을 닦아냈다, 오빠는

까맣게 터진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뜨겁게 잡고

말을 잇지 못해

시인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오빠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채문사, 63쪽)

......

우린 내 위로 오빠 셋, 언니 하나 그다음 나,

내 밑으로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 합해서 8남매였다.

우린 인천 신흥동 적산가옥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정치벽으로 집을 빚쟁이에게 빼앗기고

도화동으로 이주했다.

내 위 큰 오빠, 언니, 작은오빠는 신흥국민학교를 다녔고 나랑 바로 위 오빠는 창영국민학교를 다녔다.

도화동으로 이사 와서 엄마는 밤낮 돈을 버느라고 바빠서 오빠랑 나를 가까운 학교로 옮겨주지 못했다.

우린 십리 길을 걸어 다녔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가정형편은 더 나빠져서 6학년인 오빠가 구두닦이를 했다.

두 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 우리 오빠.

결국 오빠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등록금을 책임져 주었다.

도화동에서 여자아이가 중학교 진학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오빠와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에 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교대를 갓 나온 처녀선생님인 박복금 선생님은 육성회비와 시험지 대금,

나아가서 중학교 원서까지 사주셔서 나는 인천에서 제일 우수한 인천여중에 합격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절대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오빠의 손을 잊지 못한다.

손등이 새카맣고 터져서 갈라진 오빠의 손을,

그렇지만 한없이 따뜻했던,

***필자소개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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