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메타포] 장자의 호접몽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 조각가 박상희
검은색의 커다란 나비가 내 주변을 날아다니더라.
어?
우아!
저렇게 큰 나비가 있다니~~~
그렇게 생각할 때,
내 뒤에서 "아빠! 저 나비 잡아줘!"라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앞에서 팔랑이는 검정 나비에 살며시 손을 내밀며 몇 번의 실패 끝에 잡았다.
행여나 날개가 접히거나 상처 입힐까 봐 조심스러웠고 손에서 느껴지는 나비의 떨림과 진동이 마치 내 심장처럼 생생하다.
보통 꿈이 쉽게 잊히는데 손안의 날갯짓과 보드라운 촉감이 꿈을 깨어서도 남아있다.
"고맙다. 내 손!"
그러나 꿈속에서 음성으로만 들렸던 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고 난 후, 딸아이의 생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딸이 나비가 되어 음성으로나마 아빠를 찾아왔음을~~~
꿈이라는 게 너무너무 아쉬어 눈물을 쏟았다.
대학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끝낸 며칠 후,
내 방 창문으로 노오란 색의 여치가 들어왔다.
검은 밤이었다.
책상의 전구 빛을 받은 여치는 노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치 고흐의 그림에서 보이던, 아주 밝게 빛나는 순수하게 예쁜, 노오란 색의 여치였다.
나는 창틀에 앉았던 여치를 한참을 보다가 문득, 혹시 엄마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여치의 모습으로?
동생까지 먼저 결혼시키고 혼자 남은 아들이 애처로워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것이 아닐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 때문에 맘 고생하시던 어머니.
그때, 엄마가 그리웠다.
그랬다.
이별은 아픈 것이다.
아프기에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립기에 아픈 것이다.
아무리 꽃이 예쁘고 하늘색이 푸르고 바다색이 향기처럼 짙어도 혼자 보는
아름다움은 슬프더라.
평소, "집, 창문 아래의 꽃에 물 줘야지!" 했으나
정작 딸아이 영혼의 갈증엔 무심했던 아빠.
그런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나를 죽이고 싶었다.
'미안하구나!'
꽃에 물 주고 꽃피울 때마다 아팠던 마음이 겨우내 옅어지다 봄의 새싹처럼 돋아나던 참척의 고통이 꽃이 진 자리를 볼 때면 오히려 잠깐이나마 잊힌다.
차를 마시고 싶었다.
말린 목련꽃 봉오리를 한 움큼 손에 담으니 보드라운 솜털의 질감과 가벼운 충족감이 꿈속의 나비 같아 좋았다.
미처 피우지 못한 목련의 향기, 따듯한 차를 마시니 진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 봄 지나 또 봄이 오고 꽃 피고 꽃 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엔 날카로운 삭풍이 지나간다.
그립고 아릿한 그리움마저 끝나는 그 지점으로 그렇게~
들리는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가 어딘가요?
거기 있나요?
고통이 소멸하여
평화의 소리만이 침묵처럼 가라앉은 고요한 자리,
안식의 그 곳으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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