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미니픽션 <두 세기에 걸친 연극>

이만주 승인 2024.05.18 16:01 의견 0
이만주 문예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미니픽션 <두 세기에 걸친 연극>

세상에서 제일 짧은 소설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다음과 같은 소설이라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 한번도 신지 않은 어린아이 신발을 팝니다."

단지 여섯 개의 낱말로 이루어진 것을 소설이라고 내놓은 헤밍웨이를 보면, "그 양반 장난 한번 걸지게 했네"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여섯개의 단어를 두세 번 읽다보면 많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소설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콩트라는 장르도 있고 이미 많은 이들이 손바닥 같은 분량의 장편(掌篇)소설, 엽편(葉篇)소설을 시도했었다. 실제로 '천일야화' 못지않은 엽편소설집을 낸 소설가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200자 원고지 20매 안팎 분량의 미니픽션(Mini-fiction)을 쓰는 '한국미니픽션작가회'가 있다.

이번에 창립 20주년에 즈음하여 지난 4월 30일, 33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무크지 제6집, <푸른 기억의 퍼즐>(도서출판 좋은땅, 17,000원)이 나왔다.

내 작품도 한 편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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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기에 걸친 연극>

이만주

무뚝뚝해 보이는 커다란 건물. 그 응고된 콘크리트 속에서 추억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러면서 지훈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추억도 그 콘크리트 속에 버무려져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연극의 추억이.

“생은 연극이고 모든 인간은 배우”라지 않는가?

신촌기차역 앞을 지나던 지훈은 민자 역사로 새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우람한 건물이었다. 바라다보아 오른쪽은 새 역사이고 왼쪽은 ‘메가박스’ 영화관이었다. 옛날 신촌역사가 새 역사 한쪽에 존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지금은 서울의 전철 2호선 신촌역에 이름을 내어 주었지만 남북분단 전까지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기차 노선이라는 데서 이름 붙여진 경의선의 신촌역이었다.

새로 지은 신촌기차역이 들어서기 오래 전, 옛 신촌역 앞에는 커피보다는 술을 위주로 파는 작은 카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카페 주인들 중에는 약간 퇴폐적으로 보이면서도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의 여인들이 있었다. 그런 여인들 때문인지, 또는 근처에 있는 여자대학교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인지 저녁때가 되면 으레 그곳 카페들로 출근하는 대책 없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저녁에서 늦은 밤까지 두, 세 군데 카페를 들개처럼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지훈은 그렇고 그런 월간전문잡지의 편집장이었다. 그도 마감 때를 제외하곤 거의 매일, 퇴근 후엔 그 신촌역 일대를 어슬렁거렸다. 그도 그 신촌역 앞 카페들을 배회하는 한 마리 들개였다.

안개 낀 것 같은 어둑한 ‘무진기행’. 그 작은 카페는 지금 신촌기차역사가 삼켜버려 가늠할 수 없으나 건물 왼쪽 되는 위치에 있었다. 어느 날 지훈은 그곳 무진기행에서 연극배우 이봉수를 만났다. 이봉수는 연극배우 중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 아니, 일반인과 비교해서도 기록적으로 작은 키가 오히려 연극배우인 그를 살리는 캐릭터였다.

이봉수는 예술가로서 철학이 뚜렷한 편이었고 자기 나름대로 연극예술관을 갖고 있었다. 유난히 책을 많이 읽어 유식하기도 했거니와 그만하면 사람 됨됨이도 괜찮았다. 지훈과 이봉수는 갑장이었다. 어느 새인지, 약속할 것도 없이 둘이 무진기행에서 조우하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월간잡지 근무란 것이 격월간지나 계간지와는 달리 매달, 매달을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월간지란 대부분 매달 1일이 발행일이기에 책이 나온 월초 며칠 동안만 마음이 한가할 뿐, 곧이어 외부에 원고 청탁하랴, 취재하랴, 글 쓰랴, 계속해서 바빠진다. 그러다가 마감일이 다가오면 모든 것을 완결지어 잡지 한 권의 모든 것을 완성하느라 숨 막히는 초긴장 속에 있게 된다. 그래서 월간지 편집부 기자를 위시하여 미술팀의 남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달거리’를 한다”고 하며 마감 때를 ‘달거리’라는 은어로 표현한다.

달거리를 끝낸 어느 날, 지훈은 그 후련함에 퇴근하자마자 잡지사가 있는 여의도에서 무진기행으로 향했다. 그날 지훈은 신촌역 앞길에서 이봉수와 마주쳤다. 그를 알게 된 지, 채 6개월이 되지 않는 날이었다. 그때 이봉수는 다짜고짜 지훈에게 2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지금이야 20만 원이 그리 큰돈이 아니지만 37여 년 전엔 그리 적은 액수의 돈이 아니었다. 어림잡아 지금의 100만~20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이었을 것이다. 월급쟁이인 지훈에겐 실제로 그런 여유돈이 없었다.

지훈은 “내가 무슨 현금이 있어? 나, 돈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이봉수는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로 뽑으면 되잖아” 했다. 놀랍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얼마나 다급하면 이럴까”하는 측은지심과 “지금 급해서 그러는데 1주일 후에 꼭 갚겠다”고 다짐하는 바람에 지훈은 근처 현금인출기에서 20만 원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그런데 웬걸! 1주일커녕 한 달이 지나고 수개월이 지나도 이봉수에게서는 연락조차 없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었다 “질이 안 좋은 인간이구나,” 또 한편으로는 “그래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그 적은 돈, 가난한 예술가한테 기부한 걸로 치자.” 그 이후로 오다가다 그를 만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만 원 건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20만 원 잃은 것을 별로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촌 후미진 골목의 구석집에서 방 한 칸 월세를 살고 있던 이봉수는 신촌의 카페를 훤히 꿰고 있었다. 연극배우란 한 연극이 끝나면 그야말로 고등실업자다. 그는 놀 때면 신촌의 이 카페, 저 카페를 헤집고 다녔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연극배우인지라 안주 없이 맥주 한 병만 시켜 먹는 손님이지만 대부분의 카페에서 반겼다.

한 날 저녁, 무진기행에서 만난 이봉수가 지훈을 다른 카페로 인도했다.

“조그만 카페인데 여대생 둘이 종업원으로 알바를 하고 있어. 그런데 둘 다 근사해.”

그를 따라 실제 그 카페에 가보니 여대생 알바 둘이 있었고 둘 중에서도 늘씬한 키에 미인인 H가 있었다. H는 여대 3학년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웠고 시원시원했다. 덕택에 그 저녁, 작은 병맥주를 기분 좋게 마셔댔다. 하지만 상대가 20 초반의 여대생인지라 30 후반의 직장인 남자였던 지훈은 H를 사귀어야겠다는 발심을 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미 이봉수가 그녀를 심히 좋아하고 있어 친구로서 최소한의 의리심도 일어 H에 대한 관심을 더 이상 부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바로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이봉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H가 슬며시 지훈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나 한 시간 후에 친구 혼자 서빙하라, 하고 집에 갈 수 있으니 9시 30분에 길 건너 L 카페에 가 계셔요.”

이렇게 해서 H하고의 관계가 시작되었고 둘은 20에서 조금 모자란 큰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찰떡궁합이 되어 10년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지훈이 직장 생활과 실업자 생활을 번갈아 가며 불안정한 삶을 사는 데다, 둘의 나이 차이가 너무 커 결혼은 하지 못한 채로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H는 전공인 현대무용을 더 배워보겠노라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긴 세월, 지훈이 이봉수에게 H와의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전혀 얘기하지 않아 이봉수는 둘 사이에 대해 내내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이봉수는 지훈에게 있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20만 원을 빌려준 지 15년쯤이 지난 어느 날, 지훈은 이봉수로부터 새삼스런 전화를 받았다. “저녁을 한 번 같이 하자”는 거였다. 그래서 그를 만났더니 겉에 ”고맙습니다“라고 쓴 흰 봉투를 하나 건넸다. 신기해하며 열어 보니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지훈은 놀랐다. 15년 만에 반이라도 받았으니 너무 감격한 나머지 다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후에 다시 이봉수로부터 지훈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 한번 만나자는 거였다. 연극은 대부분 가난하게 이루어진다. 그러하기에 연극인들은 싸고 맛있는 음식점들을 잘 알고 있다. 대학로에서 낙산 쪽의 위 골목, 서울의 ‘오프 브로드웨이’라 할 수 있는 곳의 허름한 음식점에서였다. 이봉수는 지훈에게 푸짐한 제육볶음에 소주를 대접했다. “아니, 관객이 배우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관객에게 술을 대접하다니,” 속으로 생각하며 소주잔을 들었다.

그때 이봉수는 지훈에게 흰 봉투를 하나 건넸다. 봉투 겉면에는 “그간 고마웠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열어 보니 그 안에는 다시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지훈은 멍해지며, 먹먹해지며 봉투를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2세기에 걸쳐 20만 원 채무의 변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 지훈은 2세기에 걸쳐 자기라는 관객 한 명만을 상대로 서울이라는 무대에서 이봉수가 펼친 한 편의 감동적인 연극을 본 것이다.

이봉수와 소주를 마시는 지훈의 눈에는 시원스레 미소 짓는 H의 모습이 내내 어른거렸다. 돌이켜보면 지훈은 이봉수 덕에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 생의 화양연화(和樣年華)를 H와 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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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만주]

***필자소개 /이만주

1994년 올해의 여행작가상, 2018년 동반예술가상 수상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 에세이집 『이만주 세계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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