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메타포] 인간은 기생충이 아닐까? 생각하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
강화도는 물론 지방 여행 중 장작나무를 연료로 하는 식당을 자주 본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와 불 태워 없어지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으로 볼 때 지구의 미래는? 끔찍하다.
예수회 교단의 성직자들은 지금의 환경 파괴 속도로 볼 때, 350년 후엔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 전망한단다.
문득 지구의 산소, 약 20%를 공급한다는 아마존 밀림과 사람의 뇌가 신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비한다는 것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심해, 수천 미터 해저와 지구의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남극의 얼음과 눈,바닷물에도 플라스틱 조각과 유해 화학물질로 오염되었고 죽은 거북이, 물개, 조류등의 뱃속엔 비닐과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를 인간은 또 다시 잡아 먹고 그렇게 계속 지구환경은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 오염이 가속화 되고 있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미세먼지로 인해 전세계의 700만명이 조기사망했다고 한다.
흡연사망율 600만명 보다 높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철학하고 인류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인 자동차를 운전하고 예술도 하고 시도 쓴다. 모순矛盾이다.
이것을 文明이라 한다.
그리곤 이젠
핵폭탄을 만들어 자기네들,강대국의 핵은 그대로 유지한 채, 북한의 핵을 비핵화하고자 트럼프와 김정은은 빅 뉴스를 생산한다.
코미디다.
인간이 만든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사랑하자면서도 서로 죽이고 갈등하며 대립한다. 모순이다.
이것을 文明이라 한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려 준 태아의 건강은 물론 동식물의 생산성도 좋단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으면 지금도 나는 사랑하고프다.
음악은 살아 있다는 존재의 기쁨을 체감케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커피와. 한잔의 술을 마실 때에도 행복하다.
이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없어도 붉고 아름다운 노을은 있었다.
들판의 붉은 양귀비와 제비꽃도 있었고 옆으로 부리를 젓는 저어새와 몇시간을 꼼짝없이 고고하게 서있는 왜가리도 수 천 수 만년 전부터 저러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엔 수백마리의 기러기가 대형을 이뤄 지금도 대륙과 대륙을 날고 있다.
아프리카의 코뿔소와 밀림의 오랑우탕, 화려한 색갈의 앵무새와 하이에나 등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들 방식으로 살고 있다.
맹꽁이와 도룡뇽, 소금쟁이,흙과 물 속의 생물들 역시 공룡처럼
자연은 예기치않은 환경에, 또는 스스로 소멸하고 회복하고 자정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그러나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건만 왜 인간은 바이러스처럼 스스로 계속 증식하고 지구를 병들게 할까?
그러면서 인간은 수천년간 뺏고 빼앗기는 침략과 전쟁을 해왔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탐욕과 투기하는 한 쪽에선 명상하며 사랑하고 헤어지고 연주演奏하는 그런 인간의 이야기로 책을 쓰면서 또 철학을 한다.
지금도 폭발하고 있는 화산의 용암은 지구의 뜨거운 혈액이고 숲 속의 새들과 풀잎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지구의 노래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모순矛盾이 있다.
이 모순 역시 자연이다.
이 세상에 모순이 없다면, 세상의 이치가 모두 합리적이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재미 없고 지루할 것인가? 그 가운데 문학과 예술과 철학이 있고
그런 인간들의 흔적이 文明이고
그것의 기록을 歷史라 한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이런 잡설雜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아직은 지구가 살아갈 희망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 대지의 여신 Gaia에게 버림받기 전 우리들이 파헤치고 할퀴어버린 지구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순 없을까? 낙엽이 썩어 흙이 되듯 산업쓰레기들을 바로 흙으로 환원시키는 무공해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수는 없을까? 비록 모순의 모순矛盾일지라도.
우리는 그래도 소크라테스와 노자와 공자, 미켈란젤로, 반 고흐와 정약용과 세익스피어를 배출하고 아인쉬타인과 예수와 부처의 DNA를 갖고 태어난 생각하는 기생충들 아닌가?
토요일 새벽에
강화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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