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감성일기] 만우절, 속지 말자

이대영 승인 2024.05.19 17:41 의견 0
이대영 문학박사, 중앙대예술대학원장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대영 감성일기] 만우절이다. 속지 말자.

고교시절이다. 전도사님께서 방으로 오라고 하시다. 감리교이다. 워낙 나는 장로교로 시작하였으나, 이사하고 또 교회가 침례로 바뀌고 감리로 재차 바뀌었다. 전도사님 방에 들어서니 사방팔방이 책이다.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인 듯했다. 끝도 없이 책이 이어졌다. 앉았다. 담배를 권한다. 이 무슨 상황인가. 하여 전도사님 왜 이러세요. 다 봤다. 뭘요. 너 담배 피우는 거. 아... 보신 모양이다. 끽연 이거 상단에서 배운 못된 습관이다. 전도사님이 담배를 피우시더니 한 대 다시 권하기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고개를 꺾어가며 담배를 피웠다.

대영아. 너 공부해라 신학. 신학과에 가라.

아뇨.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안다. 일단 신학으로 출발해라.

아닙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등등 지금 영어도 벅찬데.

그럼 이 책을 읽어라. 독서토론 후 결정하자.

하며 주신 두 권의 책.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1,2권이었다. 독후감 써보고 다시 고민해라 하시다. 그때 나는 그 적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다. 깨알같은 글벌레 문자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읽었다. 그 적들과 투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당시 나는 고등부 회장이었다. 부활절, 성탄절 등 성극은 주로 내가 대본 쓰고 연출하곤 했다. 가리방 철필로 기름종이 살살 긁어서 등사기로 밀어야 나오는 새샘교회 주보는 거의 내 몫이었다. 오른팔과 왼손의 기계적인 조화가 빠른 등사의 필수조건이다. 뒷면의 악보가 특히 어려웠다. 잘못 그으면 오선지가 다 번져 삼선지나 이선지가 되곤 했다. 그 시절 나와 함께 방언을 하던 내 절친 동료들은 대개가 목사님이 되었다.

나는 문학과 연극을 하며 그길과 멀어졌다. 세속적인 인간이 되었으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신불산 중턱의 작은 암자 문수암에서 깜짝 출현하신 수염없는 청년 예수를 잊지 못한다.

왜 날 의심합니까. 그럼 여기서 얼어 죽으란 말입니까.

혹독한 겨울, 그렇게 따지는 내게 주님은 어떤 말도 없이, 한없이 노려보다가 결국 씨익 웃고 사라지셨다. 수염이 없다니. 2013년 겨울이다.

염색을 하며, 헤어숍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무심히 응시하다가 불현듯 그날의 예수님과 전도사님이 생각나다.

개인의 존엄, 자유의 가치, 자연의 숭고함을 느껴라. 파쇼, 나치, 코뮤니즘 등 온갖 종류의 전체주의와 투쟁하라. ‭‭거짓에 재를 뿌리고 진실에 물을 줘라. 불법과 악행을 견디지 마라. 선악을 구별하라. 믿음을 게을리 말고, 지식에 눈감지 말라. 독수리처럼 오르라.

독수리라니, 연대 신학과에 가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정해놓았으니까. 거기에서 금관의 예수처럼 글을 쓸 테니까. 글벌레 잡으며 멀리 돌아서 갈거니까. 그렇게 개인의 자존과 인권과 사랑이 꽂피는 미래사회를 위해 입체적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며 무대를 꿈꾸고, 지금도 그 길을 따라 멀리 구비구비 휘돌아 걷고 있으니까.

거울 속 내 모습이 차다. 북녘땅은 지금도 춥겠지. 그들에게 자유와 미래를.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된다. 뚜벅뚜벅 천천히 돌아서 가자. 글로벌 아카데미 등 할 일이 많다. 따르는 후학들도 많다.

나는 아직도 유전처럼 습속처럼 대한민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그 상상과 상징의 내재적 전쟁에서 방황하고 있다. 거짓과 위선, 허영과 사치, 몰염치와 부도덕의 숲길을 미로처럼 헤매이는 중이다. 주여, 온갖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힘을 주시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주시기를.

염색을 한다는 것, 미적 욕망을 채우는 행위이다. 호모 에스테티쿠스의 본능이다. 생머리로 돌아오니 더 앳된 모습이다. 예뻐진 모습으로 학교를 향해 오르다. 거리거리마다 어린 꽃들이 재롱부리듯 흔들리며 만발하다. 제자 녀석들 깜짝 놀라겠지. 분명히 젊어졌다고 할텐데 립서비스다. 만우절이다.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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