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준철]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의 와인 탐욕

김준철 승인 2024.07.02 11:13 의견 0
김준철 와인전문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기고 김준철]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1893-1946)의 와인 탐욕

1940년 여름,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나치의 고위 관리들은 프랑스 전역에 사람을 보내 고급 와인을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약탈된 와인은 독일로 운반되었다.

프랑스 뿐 아니라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의 점령지 와인도 독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나치의 고위 관리들 중에 독일의 제2인자인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의 와인에 대한 탐욕은 대단했다. 샴페인도 대부분 독일로 흘러들어 갔지만, 특히, 고급 샴페인은 괴링이 거의 차지하다시피 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베를린에 있는 괴링의 셀러에는 수천 병의 프랑스, 독일, 헝가리, 몰도바의 고급 와인이 쌓여 있었다. 이때 괴링은 오스트리아로 도피하였는데, 소련보다는 연합군에 항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이 함락되었을 때 그의 와인은 소련군이 차지했다. 소련군이 일부 마시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모스크바로 보내졌고, 그 중 일부는 몰도바의 크리코바(Cricova) 셀러로 보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괴링이 소유했던 129병의 와인은 현재 병당 1만 달러 또는 1만 5천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당시 남부 독일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미군과 프랑스군은 히틀러의 별장인 ‘베르크호프(Berghof)’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했다. 이 별장은 히틀러가 외국의 국가원수와 고위층들을 접대하는 데 사용되었던 곳이다. 미군이 먼저 도착했지만,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만 보일 뿐이었다.

프랑스군은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연합군의 폭격이 닿지 않은 독수리 요새(Eagle's Nest)까지 올라갔다. 전쟁의 마지막 날에 이곳의 와인 저장고가 열렸고, 최고급 와인, 샴페인, 코냑 등 50만 병으로 추정되는 와인 저장고를 발견했다.

이들은 떠나기 전에, 16,000병의 고급 와인이 들어 있는 괴링 소유의 지하 저장고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도 수천 병이 있었다. 괴링이 가장 좋아했던 와인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였다.

나치의 와인 마니아인 괴링은 5월 5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에서 구금되었다. 그곳은 미군과 프랑스군이 앞 다투어 경쟁했던 와인 저장고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국제 군사 재판소에서 열린 나치 지도부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히틀러, 괴벨스, 힘러 등은 체포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괴링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그는 처형되기 전날 밤 자신의 감방에서 청산가리 캡슐을 삼키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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