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메타포] 풀잎은 새의 무게를 기억하지 않았다 / 조각가 박상희
나는 왜 천상병의 어깨에 새를 올려 놓았는가?
천상병이 1952년, 갈매기라는 시로 등단해서도 아니고 그의 유고 시집이 <새>여서도 아니다. 그의 새는 그의 자유의지의 상징이기도 하나 그것 역시 아니다.
나는 그의 동상과 시비 제작을 의뢰받고는 동상이 세워질 곳을 십여 차례 오가며 작품 구상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가난과 순수, 시대와의 불화와 현실 너머의 피안과 우주에 대한 도교적 관조 등을 생각하며 어떤 이미지로 그를 온전하게 담을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조작된 동백림 사건으로 육 개월의 모진 고문과 구금은 그의 여렸던 육신과 영혼을 더욱 피폐케 하였고 천상병은 그 때의 상처를 시로 남겼다.
ㅡ그 날은 새ㅡ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중략-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ㅡ
전기고문의 잔인한 폭력성을 이처럼 무섭고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살과 뼈가 기억하는 고통에도 날개가 꺽이기보다는 비록 소스라쳤으나 진실을 딛고 날개 펴는 새로서 자신을 치환시킨다.
나는 이때까지도 그의 어깨에 새를 올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일생과 시 세계를 가장 압축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그렸다 부수기를 수십 번, 마침내 해탈한 듯 파안대소 하는 모습을 봄날에 활짝 핀 꽃의 이미지와
가난과 독재의 시대를 거치며 오로지와 시와 막걸리로서 평생을 견딘 그의 지친 몸을 동토의 겨울을 이겨낸 나무처럼 거칠게 표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으로도 천상병을 표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상이 세워질 강화도 건평항 옆 공원의 작은 나무 숲 구석에 뭔가 보였다.
새였다.
자신의 주검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몸의 반은 풀숲 사이에 들어가 있었고 부드럽게 보이는 몸뚱아리는 단단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란 말인가?
바닷바람은 잿빛의 깃털을 흔들었다.
그때,바람결에 살짝 들리는 죽지 밑의 하얀 솜털은 나를 아프게 찔렀다.
당황한 나는 눈을 감을 수 밖에.
바다엔 멀리 나가는 배와 돌아오는 배가 교차했다.
날씨도 흐렸다.
그 때, 천상병의 시가 떠올랐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슬픈 예감이었다.
나는 그 때 비로서야 그의 어깨에 새 한 마리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와 함께 있어 줄, 그의 귀에 “이젠 괜찮아!”하며 위로해 줄 친구로서.
어쩌면 정말 그가 새가 되어 어딘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을 지도 모를 그 새로서.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새는 자신이 떠날 때를 알고 있었을까? 더 이상 날 수 없음을 알고 마지막 착지의 땅으로 내려와 날개를 접는 그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 인간사 아무리 독생독사(獨生獨死) ,무시무종(無始無終) 이라 해도 대부분 떠나감을
슬퍼하는 친구들과 가족은 있을 터,
그 작은 몸뚱아리는 누가 걷어줄 것인가?
다음 날 가 본 그 자리엔 누운 풀잎 위로 작은 털 조각만이 남아있었고 여러 날이 지난 후의 풀잎은 다행하게도 새의 무게를 기억하지 않았다.
인간과 하늘을 이어준다는 새는 죽어서 자신의 육신을 깨끗하게 소멸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까?
바람은 인연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하나 이 새의 육신은 무슨 인연으로 이 곳에 형상으로 남았는가?
흐린 하늘엔 갈매기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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