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충돌 불가피한 창조론과 진화론

김대웅 승인 2024.07.07 15:37 | 최종 수정 2024.07.07 16:12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충돌 불가피한 창조론과 진화론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하지만 영국의 청교도(淸敎徒)들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기독교개혁주의자)들이 이주해서 건국의 기본세력이 됐던 만큼, 개신교 신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미국의 화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이 문구는 1956년에 공식적으로 지정된 미국을 상징하는 공식표어이기도 하다. 청교도, 프로테스탄트들이 영국에서 참다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해 왔듯이, 그 만큼 미국은 대다수 국민들이 기독교를 신봉하는 국가다.

20달러짜리 지폐속의 문구. 1864년 미국 동전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1956년 미국의 공식적인 나라 표어로 지정되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표어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미국에 사는 다수의 기독교 신자들이 우리 인류의 기원과 관련해서 ‘창조론(創造論)’을 신봉한다. 미국 기독교 신자의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창조론을 믿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2000년대초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아들 부시)도 창조론 옹호자였다.

‘창조론’(Creationism; 지적설계론)이란 쉽게 얘기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과 생명체가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God)에 의해 창조됐다는 이론이다. 창조론자들은 기독교 성경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를 믿고 하나님 6일동안 모든 물질과 생명체를 창조하면서 인간도 창조했다고 믿는다. 성경의 말씀은 상징과 비유로 가득하지만, 창조론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글짜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조물주인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류탄생의 역사가 약 1만 년 전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6천 년 전이라고 주장하는 창조론자들도 있다.

그러면 화석 등을 통해 존재가 분명하게 검증된 수백만 년 전부터 수만 년 전까지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은 누구란 말인가? 국내의 어느 목사는 그들은 하나님에게 선택된 인간이 아니어서 참다운 인간이 아니라는 억지주장을 편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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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미국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창조론을 굳게 믿어 1925년 테네시 주에서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인류의 기원에 대해 성경에서 벗어난 주장은 가르칠 수 없다는 ‘버틀러 조례’(The Butler Act)를 공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과학에 근거한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과 큰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는데, 테네시 주의 어느 고등학교 생물교사가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고발 당했다. 그의 재판은 큰 관심을 끌었지만 결국 그 생물교사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존 스콥스. 테네시 주에서는 일찍이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는 Anti- Evolution Law(반 진화론법 또는 버틀러법, Butler law)가 있었는데, 1925년 7월 21일 데이튼(Dayton)의 공립학교 교사 존 스콥스(John Scopes)가 금기시된 진화론을 가르쳐 법정에 서게 되었다. 소위 ‘원숭이 재판’(The monkey trial)이라 불리는 이 재판에서 결국 그는 패소해 벌금 100달러를 물었다.


창조론자들은 우리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 침팬지라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진화했다는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는 법이 공포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거의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의 근원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창조론이 우세했다.

그 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우세해지면서 미국헌법이 수정되는 진통을 겪고 나서야,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은 법에 위배되며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판결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당황한 창조론자들이 새롭게 들고 나온 것이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이다.

‘지적설계론(知的設計論)’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대상이 의도적인 존재냐, 우연한 존재냐 하는 것을 가리는 이론이다. 위기에 몰린 창조론자들이 그들의 창조론에 그들 나름으로 과학적 요소들을 첨가한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생명체가 단일한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있다면 인류를 짐승이나 단세포 생물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하며 진화론을 공격했고, 인간의 자유의지, 윤리, 예술같은 숭고한 가치들이 무기물에서 진화돼 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태어났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그들은 우리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그처럼 정교하고 정밀한 생명체는 우연히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시계(時計)처럼 정밀하고 정교한 기계는 우연히 탄생할 수 없으며 누군가 그것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체는 우연히 탄생할 수 없으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기술자가 바로 조물주인 신(神)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러한 주장은 창조론을 위장한 것이어서 과학에 근거한 진화론과 충돌이 불가피했다. 마침내 이들의 충돌이 법정공방으로 비화한 것이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이른바 2005년의 ‘도버 재판’(Dover Trial)이다. ‘원숭이 재판’이 이루어진지 딱 80년 후의 일이다.

도버는 미국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인구 약 2만 명의 소도시다. 이 도시의 주민들도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을 놓고 큰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이 소도시의 하나뿐인 고등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생물교과서가 문제가 됐다. 이 학교에서는 미국 전역에서 교재로 쓰고 있는 진화론이 실린 생물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자 창조론자들이 주축이 된 교육위원회에서 지적설계론도 생물교과서에 포함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쳤고 이에 학부모들이 반발하면서 법정다툼으로 비화된 것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진화론이 신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주장하면서 변호사를 내세웠는데, 그는 당시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은 재판이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6주간의 재판이 진행된 끝에 판사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닙니다. 종교적 의도에서 만들어졌음으로 도버 고등학교에서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는 것은 헌법의 수정조항에 위배되는 위헌입니다.”

‘도버 재판’의 담당 판사 존 존스 3세(John E. Jones III)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이 도버 재판 이후, 창조론이든 지적설계론이든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주장은 크게 위축됐다. 이 재판을 놓고 당시의 언론들은 ‘신과 과학의 전쟁’이니 ‘종교와 과학의 전쟁’이니 하며 대서특필했다.

생명체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신(God)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창조했다는 지적설계론에는 한가지 함정이 있다. 모든 생명체, 특히 우리 인간과 같이 정밀하고 정교한 지적생명체가 창조될 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지구에 수십 억 년 전, 처음으로 생명체가 탄생할 때는 단세포 생물이었다. 그것이 진화하면서 다세포 생물이 등장했고, 암컷과 수컷이 만들어져 짝짓기를 통해 번식했다. 또한 진화과정을 통해 바다의 물속에 살다가 뭍으로 나오거나, 물과 뭍을 오가거나 여전히 물속에 사는 생명체들도 있었다.

혜성과의 충돌로 대멸종을 겪었지만 굴 속에 살던 작은 포유류가 살아남았고, 그들이 진화하고 분화되면서 다양한 포유류가 등장했으며 원숭이, 유인원을 거쳐 마침내 두 발로 걷는 인류가 탄생했다. 그 사이에 수억 년에 이르는 숱한 진화과정이 있었다. 우리 인류는 누군가에 의해 어느 한 순간에 마치 정교한 시계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해 3월에 별세한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는 “당신이 원한다면 자연법칙이 신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신이라는 존재의 정의, 그 이상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말했듯이 “창조론(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며, 진화론은 종교가 아니다.”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종교와 과학은 영역이 서로 크게 다르다. 종교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과학을 종교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은 결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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