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알파별 스피카

박미산 승인 2024.07.07 15:53 | 최종 수정 2024.07.10 16:05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알파별 스피카* / 박미산

사람들이 벽돌을 하나씩 빼내갔다

우리는 알알이 흘러내렸다

과외를 받던 아이들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벽돌을 쌓아올린 집에

사라진 아버지 대신

낯모르는 얼굴들이 드러누웠다

담배연기가 내 방을 점령했다

처음 가져본 나의 방엔

중학영어, 국어문제집들이 상에서 뒹굴고

온몸에 들러붙는 그들의

고함 소리를 털어내려고

나는 모래바람을 삼켰다

지평선 위로 하얗게 빛나는 별이 떴다

모래알이 처녀자리에 돌풍을 일으키고

스르르 무너지는 여고시절

*스피카: 황도 12궁 중 6궁에 해당하는 별자리인 처녀자리의 으뜸별이다.

......

우리 형제들은 손수 벽돌을 나르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어느덧 구월동 우리 집이 완성되었다.

우린 도화동에서 구월동 모래마을 새집으로 이사했다.

집이 완성되자 떠돌던 아버지가 집으로 오셨다.

나는 처음 가져본 내방에서 그룹과외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내가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두어 명 가르치다가

점점 소문이 나서 아홉 명을 가르치게 되었다.

내가 과외 선생을 하는 동안 내 학비는 물론 집안 생활비까지 보태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집 앞에서 고함치는 건 다반사이고 마루와 방까지 들어와 누워 나가질 않았다.

과외를 받던 아이들은 우리 집에 올 수 없었고 나도 그들을 피해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막차 타고 집에 오곤 했다.

사기당한 아버지는 또 행방이 묘연해졌다.

결국 집을 내줄 수밖에 없던 우리는 그 집에서 삼 년을 버텼다.

모래마을에서의 내 사춘기는 모래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면서 지나갔다.

삼 년 후, 엄마와 우리 남매들은 모래알처럼 알알이 흘러내려 뿔뿔이 제 갈 길을 갔다.

별을 보며 꿈을 꾸던 나의 사춘기는 으뜸별은커녕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 필자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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