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일지]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

박한표 승인 2024.07.07 16:37 의견 0
박한표 인문운동가, 인문학자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매력적인 사람은 호감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안정적인 사람이다. 그걸, 지난 달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라는 책에서 배웠다.

누군가 한테 인정 받고, 칭찬받고, 자랑 받고 싶다고 지나치게 애쓰고, 그 마음을 티 내는 게 오히려 사람들을 더 밀쳐내게 만들 수도 있다. '남이 뭐 라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 자신이 가진 에너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면 된다.

그 게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바깥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유일무이한 사람을 살아가는 거다. 그럴 수 있을 때, 스스로 빛나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태도(態度)는 곰(熊)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그것을 마주한 인간의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試驗)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가치중립적이다. 그것들은 행운이고 동시에 불행이다. 그것들은 희망이며 절망이다. 그러나 내가 그 사건-사고에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것이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질문하는 연구소>의 설립자 마릴리 애덤스는 <<질문의 기술>>에서 질문을 ‘심판자의 질문’과 ‘학습자의 질문’으로 나누었다. “누구 탓이지?” “어쩌다 패배했지?” 라는 ‘심판자의 질문’은 사람을 불안과 패배감에 젖어 들게 하는 반면, “이 상황에서 배울 점은 뭘 까?”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은?” 같은 ‘학습자의 질문’은 긍정적으로 심리적 안정감과 새로운 도전 의식을 준다는 게 책의 논지다.

소설가 백영옥의 글에서 읽었다. "공원을 걷다가 “나이 들어 좋은 것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한 선배가 “이젠 내 한계를 알아!”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제 못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나는 이 질문과 대답을 보고, 나 자신의 일에 대한 내 태도를 크게 바꿨다. 이때 질문의 또 다른 이름은 ‘지혜’가 된다. 다음 질문을 다시 나 자신에게 해본다.

▪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100% 활용해 왔는가?

▪ 혹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맥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는 나쁜 습관은 없는가?

▪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가?

▪ 주변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오늘 <인문 일지>를 쓴다.

지난 달에 <인문 일지>에 썼던 삶의 태도를 다시 소환한다.

▪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잘 지내는 태도. 관계에 억매이거나 매달리기보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만의 행복을 느낀다. 남 눈치 안 보고, 시선 의식 안 하면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린다. 나는 다른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이 가진 그 자체의 빛을 뿜어낼 뿐이다.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괴로움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거다. 수분자안(守分自安)이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편안히 지내자'는 거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

▪ 일상에서 솔직하되 신중한 태도. 가급적 늘 솔직하게 말하고,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는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말을 꾸미거나 과장하거나, 억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솔직하되 멋대로 굴지 않고 다른 사람 말은 함부로 옮기지 않으며 자신의 불평이나 불만을 주변으로 바이러스처럼 퍼뜨리지도 않는다. 솔직하되 신중하고, 사려가 깊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항상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염두에 두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은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한다. 바로 칭찬과 격려, 이해와 배려이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존중해 줘야 하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도 내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나 자신을 믿는 태도. 다른 사람들 마음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나 남을 실망 시키면 안 되는 부담을 갖지 않는다. 남들 한테 인정받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생각과 가치에 더 중심을 두는 것이다. 자신이 부족한 점을 알고 인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믿을 줄 아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만의 기준을 따른다. 내가 불행하면 자꾸만 타인에게 관심이 생긴다. 그러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시기하지 말일이다.

▪ 뒤끝을 부리지 않는 태도. 누군가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서 불편한 상황일 때,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예의를 잃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 문제를 오래 마음에 담아 주지 않는다. 스스로를 위해 쓸데없는 감정을 길게 끌고 가지 않고, 건강한 방법으로 훌훌 털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안 좋은 감정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도 불편 해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 지난 일들을 흘려 보낼 줄 아는 태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에게 왜 그렇게 됐고, 누구 때문에 그런 건지 등을 따지고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씨름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는 삶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다.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기에 지나간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앞으로 바라보며 나아가려 한다.

그리고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는 절제와 겸손을 일상에서 선택하는 거다. 노자도 "훌륭한 무사는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이기는 사람은 함부로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늘 남에게 겸손하다"고 말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善爲士者不武(선위사자불무) 善戰者不怒(선전자불노) 善勝敵者不與(선승적자불여): 군대 통솔을 잘 하는 자는 무력을 쓰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대적하여 맞붙지 않는다.

善用人者爲之下(선용인자위지하) 是謂不爭之德(시위부쟁지덕) 是謂用人之力(시위용인지력) 是謂配天古之極(시위배천고지극):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춘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부쟁의 미덕이라 하고, 용인의 힘이라 하고, 하늘에 짝한다 한다. 이것은 모두 예로부터 내려오는 무위의 준칙(지극한 경지)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야기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윗사람에게 겸손한 건 의무, 동료들에게 겸손한 것은 예의, 아랫사람에게 겸손한 것은 고귀함이다." 그리고 <루가복음(제14장 11절)>에서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말하는 태도와 주제의 선택이다.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이, 다른 사람을 화젯거리로 삼지 않는 거다. 내가 뱉은 말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원래 내 의도와는 다른 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귀중한 시간을 잡아먹는 일 가운데 가장 쓸데없는 일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사소한 말이라도 남들 이야기를 생각없이 말하다 보면 결국 그 말의 화살은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해도 될 말인지, 하면 안 될 말인지 헷갈릴 때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두 번째로는 자기를 드러내고 욕심부리지 않는 태도의 말이 중요하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얼마나 대단한 지에 대해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과장된 표정이나 과시, 뽐내는 행동을 유독 더 경계하며 신중하게 처신한다. 사람의 진면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이 아니라, 내면의 힘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하지 않는다. 중요한 진실은 항상 반쪽만 전해진다. 또한 내가 보는 진실은 언제나 반쪽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이기고 싶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란 걸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그런 우월한 감정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독이 될 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한다.

오늘 사진은 지난 화요일 천안 강의에 너무 일찍 도착해, 고속버스터미널 주위를 산책하다가 찍은 거다. 그 가방을 보자, 황동규 시인의 <풍장>이 소환되었다. 죽으면, 저 가방에 들어가 풍장하고 싶었다. 가방이 바람과 노는 것이 좋아 보였다.

<풍장(風葬) 1/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거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사진=박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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