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주 바나나통신] 젊은 작가 김기태, 예술가가 윤리를 묻다.
오늘 여긴 여름비가 내렸습니다. 초여름 이맘때 우기를 우리는 장마라고 불러왔지요. 끝없이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길게 만나는 때가 되면 매해 그랬던 어느 날이 떠오르거나 많은 비에 생긴 에피소드가 생각나 잠시 상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간헐적 빗소리에 이사로 지친 몸을 내맡기고 쉬고 있는데 작년 큰 비에 만난 대전 계룡산에서 왔다는 청년작가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곧 있을 아트광주에 출품할 박초월 작가 작품이 통영에 있어 가지러 가겠다 했는데, 그날 오늘처럼 호우경보가 뜨고 결국 사람 하나가 쓸려가는 그런 무서운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워 SNS를 보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눈에 띈 양과 양치기 그림이 포스터인 젊은 작가의 회화전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16년 넘도록 한 화랑을 막 철수하고 이사를 한참이라 드디어 시간의 여백이 생겨 내 전시 외 무척 보고 싶은 전시를 드디어 볼 수 있어서 뭘 보고 즐기나 하고 있었거든요. 전시 제목도 재밌었어요. <양치기의 권리>였는데 상당히 뭔가 다른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 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전시 기획을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해왔으니 솔직히 기대감이 높게 생기는 일는 드물답니다.
그런데 정말 보고 싶은 거예요. 너무 오래 해서 이제 전시라고는 궁금한 게 없는 제가 탄탄한 그림체도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거 같아 캡처해 정보를 담아두었거든요. 주소가 아는 전시장은 아니지만 부산 섬유 관련 가장 큰 시장인 진시장 인근이라 내비게이션을 쳐보니 26분이 걸리는 겁니다.
아, 내가 광안리로 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해운대에선 가까운 거리가 아니니까요. 중간에 침수가 잘 되는 비가 많은 지역인 대연동과 지대가 낮은 문현동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비에 나갔다고 하면 딱 잔소리 들을 날씨인데 통영 갈 결심이었던 저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제가 좀 오래 치료를 받았는데 그 덕에 운전을 2017년부터 거의 안 했거든요. 무리를 하면 나도 문제고 주변이나 타인에 더 많은 폐가 될 수밖에 없어 전전긍긍 조심만 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 양들의 무표정과 늑대의 눈만 생생해 결국 늘처럼 후회 말고 가보자 하고서 달려갔습니다.
갔는데 여기가 어떻게 전시장이지 하는 미술과 무관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더 무관한) 지역에 본 이래로 가장 폐허의 건물 4층에 올라가니 더 많은 비가 오기 전에 철수를 위해 대전에서 온 친구들과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밝을 때 후딱 철수하지 않으면 물 폭탄에 모두 숙소를 잡아야 할 판이라 나는 잠시만 후딱 둘러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진짜 빨리 봤습니다.
그런데 설치물 하며 공간 구성하며, 그림 하나하나가 너무 탄탄한 겁니다. 한국화 물감으로 그린 빽빽한 숲에 전혀 생각 못 한 사람들 모습(절터에 남은 석상 같은 회색빛 납작한 사람들이 시대를 통일할 수 없는 차림새로 전혀 의외의 행동을 하는 장면이 모든 그림 속에 배치되어 있는)의 기묘함이 사람이 떠내려갈 비의 습도와 비의 결만큼 빽빽한 숲의 모습, 반해 머리털이 없는 남자들 모습과 불이 활활 타고 있거나 그런 불을 들고 있고 기름을 붓는 장면이 차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분명 스토리가 분명하고 안 물어도 창작이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고리도 충분히 여백을 담아 마치 거대한 교향곡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포장하려다 주춤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진짜 씩 하고 빠르게 보고 내려오는데 작가가 따라 내려왔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하는데 스물아홉 청년이 대전에서만 전시로는 한계를 느껴 부산으로 공간에서 공모하는 전시를 신청했고 이런 장소의 의미를 몰랐고 친구들이 철수를 도와주러 이 큰 비에 와주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부산 구경도 한번 못하고 가는 이 청년의 절실함과 당황스러운 상황일 텐데도 잘 설명하고 감사의 마음과 정보를 전하고 마무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버렸습니다. 철철 오는 비 사이로 침착하게 대처하는 이 젊은이가 코로나에 그렸을 이 많은 그림과 우리가 전시장 관람에서 빠른 대화까지 우연히도 딱 오는데 걸린 시간인 26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도 26분 소요되었겠지요.
그날 동래에선 여자가 한 명 쓸려가 끝내 사망을 했을 만큼 물이 지배하던 날, 그 물에도 절대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불꽃이 활활 이는 그림을 그린 계룡산에 작업실이 있다는 얌전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오는 길에 웃음이 났습니다. 한국화 붓은 마냥 부드럽습니다. 또 물감은 서양화 물감과 달라 옅게 해 올리고 마르면 또 올립니다.
그렇게 수차례 올려 결을 다 만들어 놨더군요. 그 뒤 마감도 또 해야 합니다. 수성이라 유성에 비해 손상 가능성이 높지요. 어떤 마음이기에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하더군요. 방방마다 그림과 설치물이 가득 찼더군요. 더구나 젊은 이가 무슨 돈이 있어 도록을 도톰히 돈 들여 만들었는데 편집도 직접 했는지 느낌이 다르고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다른 버전의 성경 책이나 불경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또래였던 어린 작가 이승호도 작업비를 위해 한여름 아스팔트 까는데 아르바이트를 나갔었는데 묻지 않아도 이 작가도 분명 이 전시 준비를 위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거라는 건 자명했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자기 그림을 알려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싸서 왔다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게나 있다니, 이 젊고 아름다운 건강함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하필 16년 만에 전시장을 없애버렸는데 말입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말을 합니다. 내가 부산에 마땅히 전시할 곳을 찾아보겠네. 여기는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찾아오지 않는다네.
반가웠어요. 가는 길에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정말 비가 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지난 글에 예술가의 윤리에 대해 말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이 청년작가 이름은 김기태입니다. 김기태 작가는 방금 말한 윤리에 대해 그림으로 그립니다.
구두를 신고 숲을 걸어가다 넘어져 걸린 나무를 체포하라거나, 근무시간이 아니어서 늑대가 들아와도 양치기는 양을 지키지 않아요.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 자체에는 관심이 없이 각자 좋은 처리에만 신경 쓰고 있다든지, 서로를 의심하며 자기 재산을 지켜요. 또 그냥 나름의 확신으로 방화를 합니다.
보고 있자니 마치 티비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전쟁을 일으킨 명분과 그들이 각기 평소 드라마로 보여주는 극중 이야기 같네요. 예술가가 윤리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윤리 자체에 대해 정면으로 작업하다니, 이 젊고 무모하고 잔인하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김기태 작가를 어느 날 재래시장 모퉁이에서 만난 건 정말 벼락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번개가 치거나 강한 비가 오면 그냥 김기태 작가가 떠오르고 시원해집니다.
예술가가 도덕이나 윤리에 신경 써야 하냐고요? 김기태 작가는 그것에 대답을 했습니다. 또래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직접적인 윤리 계몽 작업을요. 그래서 지루하냐고요? 천만에요, 끝내주게 화끈해요. 그래서 이 뜨거운 젊은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운대 젊은 작가 위주로 발굴하고 지원하는 허먼 갤러리 대표님께 발견되어 올해 3월에 개인전을 했습니다. <강과 너와 나무다리 사이에> 그 직전에 기획전에도 들어갔고 내년 하반기에 다시 초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8월에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 처음으로 페어 전반 자체를 맡아 진행하는 부천아트페어 2024 작가 50인에 선정되어 열심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다른 디렉터랑 친구 작가 이승주 개인전 때 만났는데 다음날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전시가 있어 우연히 주변 청년작가 디피 과정을 돕느라 거기서 청년 5인 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작품이 안 팔려 부산을 찾아왔냐고요? 아니요, 그전 전시들 작품은 다 팔려서 남은 게 없대요. 너무 청년이 멋지지 않나요? 앞으로도 좋은 그림 많이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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