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관음증과 노출증은 병일까

김대웅 승인 2024.07.28 14:56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관음증과 노출증은 병일까

오늘날 관음증과 노출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누구나 그것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거론하는 까닭은 이른바 ‘몰카’와 같이 그러한 풍조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SNS는 관음증과 노출증이라는 두 가지 심리가 만나는 곳이다.”라고 했듯이 온라인에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관음증이나 노출증은 모두 성적인 욕구와 관련이 있다. 성은 본능이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모든 행태는 호기심을 주기 마련이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관음과 노출의 기질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음증은 다른 사람의 성적 행위나 벗은 모습을 상대방이 모르게 엿보거나 훔쳐보며 성적으로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꼭 벗은 모습은 아니라도 ‘몰카’처럼 여성들의 특정한 신체부위를 몰래 찍거나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 여성의 하체를 계단 밑에서 힐금힐금 훔쳐보는 것도 관음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젊은 남성들이 몰카를 찍는 이유로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성적 충동이 주요인으로 밝혀졌다. 몰카의 대상이 거의 모두 젊은 여성인 것을 보면 성적인 욕구가 절대적인 동기일 것이다.

일본에 ‘노조끼’라는 핍쇼(peep show)가 있다. 원형으로 된 작은 방의 둥근 벽에 여러 개의 손바닥만한 사각형의 유리창이 있다. 작은 방 안에 완전누드의 젊은 여성이 들어와 갖가지 관능적인 몸짓과 성행위를 흉내내는 몸놀림을 하는 것을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 온 관객들이 작은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관음증 충족을 노린 전형적인 영업행위다. 또 일본에는 바닥이 모두 거울로 된 카페가 있었다.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의 젊은 여성이 테이블 가까이 다가와 차(茶) 주문을 받고 차를 가져올 때 바닥의 거울을 통해 노골적으로 여성의 깊숙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온갖 스트립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랑신부가 신혼초야를 치르는 방의 문풍지를 손가락에 침을 발라 뚫고 여려명의 동네 젊은 처녀들이 훔쳐보던 전통적인 풍습이 있었다. 성교육의 기능도 있었지만 관음증 충족이 더 큰 이유였다.

『사이코』(1960) 포스터 [사진=김대웅]


뭐니뭐니해도 영화는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관음을 아예 이념화시켜 관음의 욕망 해소를 목표로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관음주의 영화감독 영국의 히치콕(Alfred Hitchcock)은 1960년 『사이코』라는 영화에서에서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엿보는 장면들로 구성했다.

사실 모든 에로영화들은 관음증 충족이 목표이며, 더욱 편리하고 간편해진 온라인 디지털 매체들의 ‘야동’이나 포르노 등의 음란물은 우리 인간의 관음 욕망이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시각적 쾌락을 노린 이러한 관음적 영상매체들은 어김없이 여성이 관음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여자 몸의 주요 부위들을 클로즈업시켜 여성을 사물화(事物化)하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관음증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 여성을 엿보는 것이지만 남성을 엿보는 여성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음증은 일반적으로 성적 호기심이 강한 15세를 전후의 사춘기에 나타나서 차츰 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영상매체나 공연형태가 아닌, 그야말로 몰래 엿보고 훔쳐보는 관음증은 들킬지도 모른다는 아슬아슬함이 더욱 흥분시키고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쾌감이 있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려운 중독현상이 있다.

따라서 관음증은 성적 욕구와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그 때마다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으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분명한 정신질환이며 일종의 성도착증이다.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약 12%, 여성의 약 4%가 관음증으로 의료기관에서 정신질환의 병적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노출증은 자기 자신의 성기를 충동적으로 드러내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성적인 만족을 얻는 증상이다. 정신의학자나 의사들은 노출증과 관음증, 즉 보여줘 만족감을 얻는 것과 몰래 보는 것에서 만족감을 얻는 매커니즘은 같다고 한다. 두 가지 행태는 결국 같은 뿌리라는 것이다.

노출증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에서 나타나는데 여학생이나 여성들 앞에 불쑥 나타나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는 이른바 ‘바바리맨’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 전, 어느 검찰간부가 길가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해 큰 화제가 됐던 것처럼 정상적인 사람도 극심한 스트레스가 노출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노출증은 성행위의 전 단계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며 기습적인 노출을 목격하게 되는 상대방에게는 위협적이지만 노출증이 폭력이나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노출증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성적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여성인 상대방에게 혐오감과 공포감을 줌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전형적인 성격장애 증상이다.

노출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자신이 겪은 성적 학대 등, 성적 트라우마가 있다든가, 부모나 여동생, 누나의 성행위 또는 불륜행위를 목격한 경험이 있을 때, 지나친 자위행위가 노출증을 유발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심각한 스트레스를 우발적인 노출행위로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짜릿한 흥분과 경악하는 여성들을 보며 성적 쾌감을 얻으려는 비정상적인 욕구가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노출증은 분명한 성격장애이며 성도착증의 정신질환이다. 대다수의 관음증 환자들에게서 노출증 증상도 나타난다는 정신의학적 분석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여성들은 노출증이 거의 드물다고 한다. 여성들은 노출을 충족시킬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점점 더 노출이 심한 의상을 착용하거나 노출이 아니라도 신체에 밀착되는 의상으로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거나, 심한 경우 브래지어나 팬티를 착용하지 않고 겉옷만 입는 것도 노출증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행태에 대해 여성들은 자신감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저의에는 본능적인 성적 욕구가 깔려있다. 그리하여 남성들이 자신의 노출을 훔쳐보는 것을 겉으로는 불쾌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남성들의 성적인 시선을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경우를 성격장애나 병적인 증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관음증이든 노출증이든, 자존심이 약하거나 성적인 능력에 열등감이 있을 때 자주 발현한다고 한다. 성행위는 은밀한 사적 행위로 비밀화되고 있기 때문에 남들의 성행동을 엿보려 하고, 충동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는 것이다. 일단 그러한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욕구를 갖게 되면 멈추기 어려운 중독성을 지닌 의학적으로도 분명한 정신질환이다.

끝으로 관음증의 역사적 사건을 하나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Coventry) 지방의 영주이던 마샤 백작 리어프릭(Leofric)의 아내 고다이버 부인(Lady Godiva)이 있었다. 남편 리어프릭은 당시 자신의 영지에 있던 농민들에게 혹독하게 세금을 걷는 등 가혹하게 다루었는데, 부인은 이러한 남편에게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세금을 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리어프릭은 고다이버의 의견을 묵살한 채 여전히 농민들을 탄압했다. 하지만 고다이버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자 그는 “만약 당신이 나체로 말을 타고 내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해보겠다.”고 농담삼아 말했다.

그러자 고다이버는 고민 끝에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기로 한다. 이때 그녀가 내일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한다는 소문을 듣고 감동한 영지의 농민들은 전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친 채 무거운 정적 속에서 얼른 나체 시위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날이 밝자 그녀는 정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만 몸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톰(Tom)이라는 재단사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부인의 나체를 훔쳐보다가 그만 눈이 멀고 말았다고 한다.

관음증 환자(voyeur)를 뜻하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란 단어는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이후 이 말은 ‘엿보기 좋아하는 호색가’(a peeping lecher), ‘호기심이 강한 사람’(a man of a curious disposition)을 뜻하게 되었다.

결국 고다이버는 세금을 감면하는 데 성공했고, 농민들은 그녀의 희생정신에 감동해 그녀를 존경했다고 한다. 지금도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逆 )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를 빗대어 ‘고다이버즘’(godivaism)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17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여성이었지만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위해 수치심도 이겨내고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으며, 현대 정치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그야말로 여장부였던 것이다.

[사진=김대웅]

지금도 코벤트리 마을의 로고는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고, 관련 상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다이버 부인의 이름을 딴 수제 초콜릿인데, 이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상자의 뚜껑 안쪽에는 레이디 고다이버의 실제 일화가 상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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