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일지] 돌아가는 길

박한표 승인 2024.08.04 17:15 의견 0
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돌아가는 길

<8월의 시/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8월은 다른 달에 비해, 해야만 하는 일정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 오늘부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볼 생각이다. 마침 책꽂이에서 김경집의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두꺼운 책을 꺼냈다. 8월에 다시 읽을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문학은 "매일 힘이 되는 진짜 공부"라 했다. 그러면서 "배움이 실력이 되는 세상, 인문학 하라!"고 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서문의 제목을 "인간성의 회복과 인격의 완성을 위하여"라 했다. 최근 우리 사회가 흔들린다. 인간성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전면 등장하여 가치관을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운동가로서 인간성, 줄여서 인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격의 문제 등등을 고민하고 정리한 후, 공유하고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 싶어 이 책을 다시 읽는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공유하기 전에 사전 지식으로 언젠가 적어 두었던 글을 우선 공유한다. 인간 모습을 했다고 모두 다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분류할까? 그 기준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 1차원적인 분류: 점을 찍는다. 좌파냐 우파냐? 사실 이건 정도의 문제이지 어느 한 곳에 점을 찍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극우나 극좌는 자신은 물론 한 사회를 망가뜨릴 수 있다. 역사가 말해준다. 극우나 극좌가 다음의 인품이 저열하고, 인격의 수준이 천박하면 매우 위험하다. 최근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로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사실 좌파 또는 좌익(左翼, left spectrum)이니 우파 또는 우익(右翼 right spectrum)이니 하는 말은 정치 성향을 좌우로 분류한 체계이다. 대체로 사회적 평등을 옹호하는 입장을 좌익, 기존의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을 우익이라 한다. 이 말들은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 의회에서 혁명파는 좌측, 왕당파는 우측에 나뉘어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념이 다양한 사회에서는 좌파, 우파의 구분이 대개 추구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좌익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사회의 진보를 주장하고, 우익은 경제적 자유와 사회질서의 유지를 옹호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이다. 유럽의 다양한 정치 지형에 비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 해오고 있는 구도라는 말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것을 '수구(守舊)-보수(保守) 과두지배(oligarchy)라 불렀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 대 진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대로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이 자유주의이다.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래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자들은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 2차원적인 분류: 인품 또는 성품의 문제이다. 이건 고/저로 나뉜다. 고매한 인품 아니면, 저열한 인품으로 나 뉜다. 그 기준은 타인과의 나눔, 베품 그리고 보살핌의 정도이다. 고/하로는 안 나눈다. 그건 지위나 신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품, 성품이 나온다.

<미가서>가 도움이 된다. 여기서 선행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내가 만난 신이 요구한대로 생활하는 것이다."(<미가서> 6:8) 이를 요약하면, 정의 실천, 자비 추구 그리고 겸손 생활이다.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선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행에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토브(tob)'인데, 이 말은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라는 선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향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좋은 매너, 선행에서 나오는 사람의 좋은 향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선행이란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입장에서 향기로운가를 묻는 일이다.

▪ 3차원적인 분류: 교양의 수준이다. 심/천으로 나뉜다. 교양이 높고, 넓고, 깊은 사람을 우리는 심오하다고 한다. 그 반대가 천박한 교양 수준이다. 여기서 인격이 나온다.

멋있는 사람, 신사(紳士 단순히 말쑥한 차림세에 교양미, 예의 바른 태도를 갖춘 사람)의 조건은 자기 통제력, 정직성, 공정성, 원칙 준수, 유연성, 균형성 등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다. 넬슨 만델라, 호찌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남에게 모멸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응우엔 탓 단이 호찌민의 본명이다. 이는 성공한 사람이란 뜻이다. 호찌민은 깨우친 자란 이름이다.

한국 사회는 '가진 자'가 되기 위한 책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만큼 약자를 배려하고 많은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사회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주는 교양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담론이 별로 없다. 나의 고민은 사람들이 인문서나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는 거다. 나에게 즐거움이나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학은 "배고픈 사람에게 빵 하나 주지 못한다." (앙드레 지드) 그러나 "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추문을 퍼트림으로써 이 비정한 세계의 가혹한 현실을 폭로하고 선의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김병욱) 더 나아가, 인문학은 그 '쓸데 없음'이 마련해준 자유를 통해 실용주의에 매인 욕망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그 실용성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김현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문학의 효율성은 그 쓸모를 거부하는 데서 얻는 자유와 해방의 귀중함에 있음을 말하였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의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연구와 실험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거리'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거기서 자유와 해방을 맛본다. 그거 순진한 열정의 무용한 노력이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대체로 무용한 이론적 발견이 문명적 실용으로 변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은 '쓸데 없음'의 인식을 통해 쓸모의 의미를 살피고 현실을 반성하며 거기서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인문정신과 윤리적 관용을 키우며 인간을 아름다운 가치의 세계로 고양한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쓸모 없는 놀이의 추구와 그것들을 향한 열정이 인간의 자유로움과 거기서 얻는 해방감을 누리며 목적과 의무, 현실과 실용에 구속된 우리의 정신과 삶의 현장을 다시 바라보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환하게 열어 놓는다. 이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좋은 취향(bon goût, 프랑스어 봉구)과 교양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관심과 경험으로 사는 거다. 돈보다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는 '문화 자본'이라고 한다. 예컨대, 돈 있다고 갑자기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비싼 걸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과 의복에 대한 교양을 아는 거다. 멋진 차림새는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에 맞게 옷을 입는 거다. 그리고 색의 조화를 잘 맞추어 입는다.

젊을 때 문화 자본을 쌓지 못하면, 부자가 돼도 촌스러움을 버리지 못한다. 과거 귀족들이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을 무시한 건 그들 특유의 계급 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졸부들에겐 문화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많으면 여행을 쉽게 다닐 것 같지만, 여행은 늘 용기와 실행의 문제이다. 부자가 되었다고 원래 그런 게 없던 사람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이 있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문화자본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많으면, 돈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을 통해 인간성(인성)을 회복하고, 인격의 완성을 위해 공부하고 배워 교양의 수준을 높여야 우리 사회의 건강이 회복된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 지도자나 기업의 CEO에게 인문학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총체적인 결정을 내려애 하는 결정권자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이끌어야 하는 조직의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에게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

[사진=박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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