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우리 인간에게는 정말 살인본능이 있을까?

김대웅 승인 2024.08.10 16:03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우리 인간에게는 정말 살인본능이 있을까?

모든 동물 종(種) 가운데 우리 인간처럼 같은 종을 많이 죽이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살인은 결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어찌 보면 보편적 현상이다. 굳이 대량학살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전쟁이나 종족분쟁, 테러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살인은 결코 낯설지 않다.

영화나 소설에서 살인은 단골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상적 살인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런 가상이 아니라도 실제로 국내외 어디서나 그 이유가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살인행위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정말로 살인본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에 접근하려면 잠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인류가 동물들과 다름없이 살아갈 때, 자기들 무리의 영역에 같은 종의 침입자가 있으면 필사적으로 쫒아내거나 맞붙게 되면 한쪽이 죽어야 했다. 그것은 자신들 무리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먹이의 확보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생존본능이었다.

이러한 생존본능은 원시인류, 초기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인류라는 종은 개체수가 많은 종은 아니었다. 이동생활을 하다가 아주 드물게 우연히 같은 인류 종의 무리와 조우하게 되면, 역시 먹거리의 보전을 위한 생존본능으로 치열하게 싸웠으며 여러 명이 죽어야 어느 한 쪽이 도주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무리의 위치를 몰래 알아냈을 때, 여자를 탈취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해 상대편 무리를 죽이고 여자를 빼앗았다. 그것 역시 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싸움이 벌어졌든, 자기 무리나 상대편 무리의 죽은 자들의 시체를 먹어치웠다. 먹거리가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족사회에 이르러서 상대편의 시체를 먹는 것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위한 당당한 행위이기도 했다.

식인(食人, cannivalism), 즉 사람이 사람을 먹는 어떻게 보면 괴이한 행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동서양의 여러 종족과 문화권에서 ‘식인풍습’으로 남아있었으며 두 가지 성격을 가졌다. 하나는 생존을 위한 식인이고 또 하나는 의례적(儀禮的)인 식인이었다.

1500년 후반 경 남미 투피족(the Tupi)의 식인 풍습 [사진=김대웅]


사냥은 쉽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불규칙하기 때문에 육류를 섭취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에 식인은 육류로써 생존을 위한 단백질 섭취에 큰 도움을 줬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의식(儀式)이 생겨났다.

예컨대, 시체의 특정한 부위나 기관을 먹는 것은 죽은 자가 가지고 있던 재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경이로운 능력, 즉 어떤 마법(魔法)을 얻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를 위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살해해서 인육을 먹어치웠다. 중세에 이르러서도 인체를 먹지는 않더라도 사람을 죽여 자신들이 추앙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이용하는 제례의식이 여러 부족사회에서 성행했다.

이와 같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우리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라기보다 생존본능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인간의 살인행위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이동생활을 끝내고 전혀 새로운 정착생활을 하면서도 변함없이 널리 자행됐다.

기독교 구약성서에서 모세의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고대사회에서도 살인이 빈번하게 자행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카인과 아벨, 두 아들을 낳는다. 카인은 농사를 지었고 동생 아벨은 양치기 목동으로 살아갔다. 카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농사지은 수확물을 바쳤는데 하나님은 카인의 제물보다 양치기 아벨의 정성스런 제물을 더 좋아하셨다. 그 때문에 몹시 화가 난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다. 구약성서에서 카인은 인간이 낳은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의 살인자가 됐고, 동생 아벨은 최초의 살인에 의한 사망자가 됐다.

이것은 그 사실여부를 떠나 인간에게는 태초부터 살인본능이 있었으며 고대사회에서도 살인이 빈번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인간들이 모여 살았기에, 오히려 살인은 다양한 동기에 의해 크게 증가했다. 이를테면 재산다툼, 간음, 질투와 시기, 도둑질 등, 생존본능이 아닌 갖가지 갈등들이 살인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증거로 모세의 십계명에 ‘살인하지 마라’뿐 아니라 ‘간음하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이웃집을 탐내지 마라’ 등이 담겨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서양의 구별 없이 징역형이 등장하기 전까지 범죄자는 무조건 처형했다. 그것도 일종의 살인이며 처형방법도 갈수록 잔혹해졌다. 목을 베어 죽이고, 목을 매달아 죽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고대 중국의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황후였던 여태후는 유방이 죽자그가 총애해서 자식까지 낳았던 후궁의 팔다리를 잘라 돼지우리, 오물통 등에 넣어 고통스럽게 죽도록 했으며 자식까지 죽였다. 엄청난 질투심이었다.

죄인의 목과 팔다리를 다섯 개의 수레에 각각 묶어놓고 수레를 끌어 찢어죽이는 거열형(車裂刑), 능지처참, 부관참시도 있었다. 능지처참은 죄인을 기둥이나 형틀에 묶어놓고 몸통에서 가장 먼 발가락, 손가락부터 차츰 조금씩 잘라내며 큰 고통을 주고 천천히 죽게 하는 잔혹한 처형방식이다. 죽을 때까지 무려 5천, 6천 번의 칼질을 당하고 마침내 숨이 끊어지면 목을 베었다.

부관참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여죄가 드러났을 때, 땅에 묻힌 시신을 관에서 꺼내 다시 시신을 능지처참하는 처형방식이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검투사들을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게 하고 그것을 원형경기장에서 황제와 로마시민들이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심지어 검투사와 사자와 같은 맹수를 대결시켜 놓고 긴장감과 흥분감을 만끽하기도 했다.

중세 서양에서는 단두대(斷頭臺, Guillotine)의 공개처형이 있기 전까지 살아있는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이 보편적인 처형방식이었다. 프랑스의 구국소녀 잔 다르크도 화형을 당했다. 그러고 보면 그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살인본능이 있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악랄한 본성이 있는지 모른다.

단두대(기요틴)에서 공개 처형당한 프랑스의 루이 16세 [사진=김대웅]


현대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할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온갖 혼란과 갈등이 만연해 있는 만큼 살인행위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동기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강탈이나 보복, 특정인물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의도적 살인, 특별한 동기는 없지만 사소한 시비가 발단이 된 우발적 살인, 충동적 살인 등이 매우 흔하다. 그런가 하면,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 등의 존속살인, 헤어지려는 연인에게 보복하는 애정살인, 묻지마 살인, 특정한 동기없는 살인과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즐기고 시신을 훼손하는 등, 사이코패스(Psychopath), 소시오패스(Sociopath)의 정신질환적 연쇄살인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인행위는 일반적으로 남성들에 의해 자행되지만 여성들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남자들은 완력이나 흉기로 상대를 제압하고 살해하지만, 완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흉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약물을 이용하거나 청부살인이 많다. 더욱이 여자가 질투, 원한 등의 극단적인 감정으로 살인을 저지를 때는 남자들의 경우보다 훨씬 잔혹하다.

국제적인 범죄 과학수사 전문가이자 법의학자이며 생물학자인 마르크 베네케 (Mark Beneke)의 수많은 특정살인의 사례들을 다룬 여러 저서들을 보면 살인이 본능인지, 사악한 본성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한 후천적 행동인지, 그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간은 지금도 경쟁적으로 가공할만한 기능을 가진 살인무기들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최첨단 무기들은 한결 같이 한 순간에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는 무기들이다. 이러한 살인무기들의 개발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아무튼 우리 인간에게 어떤 형태로든 살인욕구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유전적 본능인지, 성악설(性惡說)을 지지할만한 본성인지, 분명한 판단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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