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일지] 이제 나는 인문(人文)을 다르게 해석한다.

박한표 승인 2024.08.17 15:18 의견 0
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이제 나는 인문(人文)을 다르게 해석한다.

말 그대로 하면, 인문은 '인간의 무늬'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 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공부 대상인 학문이다.

책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용적인 것, 또 하나는 인문서이다. 둘 다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지만, 차이는 나와 우리의 차이다. 자기 계발서 같은 실용서는 독자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성장하는 걸 목표로 하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기보단 환경에 순응하며 개인의 성장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실용서는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는 수명이 짧다. 인문서는 다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혹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의 이치를 다룬다. 실용서는 속독해도 되지만, 인문서는 숙독해야 한다. 인문서는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험을 해야 하기도 한다. 깨달음이란 깨달었어"라는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깨고 행동으로 다다랐을 때 일어나는 거다. '인문학+고전 읽기'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기존의 경로를 이탈하여 나를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무늬를 공부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일상이 배움이 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책을 넘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제목은 알지만 내용은 모르는 혹은 제목은 들어봤지만 정작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을 익히는 법을 넓혀보자는 거다. 흔히 인문학 하면, 문사철언예종(문학, 역사, 철학, 언어, 예술, 종교)을 말한다. 여기서 문학은 무엇을 선택할까 의 문제고,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의 문제이고, 역사는 무엇을 한 것을 기록한 거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의 인문학이 피폐해진다면 인간은 언젠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관계의 망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부조리와 야만을 재판하며, 자본의 자기 파멸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인문학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문학은 문사철을 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중요하다. 인문 정신을 지니려면, 책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공부해야 한다. 고전을 연구하는 것이 곧 인문학이라는 생각은 서양의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야기이다. 당시 르네상스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전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르네상스가 막 시작되던 당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곧 과거 그리스 고전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대학에서 휴머니스트(humanist)는 인간학(studia humanitatis)을 가르치는 교사를 뜻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주요 업무는 수도원 서관을 뒤져 고전을 발견하고, 필사본을 검토하며, 오류를 수정하고, 라틴어를 번역하여 학생들을 위해 주석을 다는 일이었다고 한다. 즉 humniste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하던 일을 보면 '고전을 가르치는 고전학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어쨌든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경향은 고전에 대한 관심의 확산이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귀족들 만이 접근했던 고전의 지혜에 시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휴머니즘(humanism)'이라 부르는 인본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여기서 휴머니즘은 '인간 다움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고대 키케로가 사람이 지닌 '인간 다움'을 의미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이 그 원류이다. 여기에 뿌리를 두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이 사람 답게 사는 것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대부분의 고전이 이미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옛날의 인문학자들처럼 굳이 고전에만 매달릴 이유가 없다. 김경집 교수는 최고의 인문학 교재로 희곡을 꼽는다. 희곡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대사를 읽어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일은 것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형상 화 시키는 과정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양한 배경지식과 더불어 스토리텔링과 영상의 결합이라는 부가적 가치를 얻게 된다.

희곡을 연극으로 올린다면, 연극은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작가가 개입하여 설명해줄 여백이 전혀 없다. 오로지 지문과 대사만을 가지고 심리나 복선, 심지어 전후 관계 등을 밀도 있게 구성해야 한다. 연국은 철저하게 제한된 막(act)과 장(scene) 안에서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는 오로지 자신의 대사와 표정 그리고 몸짓만으로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전에 연기에 대해 연출가와 토론하고 작가와 해석을 공유하거나 서로 설득시켜야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다양한 국면을 무대 위에서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는 바로 배우이다. 연극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저마다 전문가들이지만 적어도 감독 혹은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최고의 결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건 바로 리더십과 상상력의 영역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정작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음악은 그의 귀와 손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출가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할지 여부는, 회사의 사장처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결코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배우 캐스팅, 무대장치, 조명, 음악 등 관련 전문가와 충분한 상의를 통해 연출의 최적지를 도출해야 한다. 또한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도록 이끌어야 하고 자신의 의도를 살리되 배우의 해석도 존중하며, 더 나은 연기 해석을 유도해야 한다. 전체적인 조망 능력 없이 그저 대본 해석만으로 좋은 연출자가 될 수는 없다. 연출가는 작품 전체를 조망하고 해석하며 관객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마치 좋은 기업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다. 배우가 무대에서 최종적인 결과를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기업의 조직원 각각이 배우인 셈이다. 배우가 자신의 대사만 외고 자기 동선만 염두에 둬서는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배우의 대사와 동선도 파악해야 하고 연기의 앙상블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배려와 협력이 필요하다. 배우들이 자기 작품 전체에 대해 연출노트를 만들어보는 것처럼, 기업의 직원도 CEO의 입장과 스태프의 입장을 그려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조각의 일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함께 길러야 한다.

좋은 연출가와 스태프, 그리고 배우의 팀워크가 훌륭한 연극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러 차원에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희곡 읽기와 실습을 하면 창의력, 상상력, 리더십, 멤버십을 기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나의 경우는 대학 시절에서 프랑스 작가의 몰리에르 작품으로 프랑스어로 연출하여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희곡의 대사를 그저 읽고 해석하고 작품 분석을 하는 것과 다르다. 한 희곡 작품의 무대를 그려보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희곡은 큰 그림을 그려보는 연습을 하게 하는 문학 장르 중의 하나이다.

모두들 휴가를 갔는지, 세상이 조용하다. 우리 가족은 올해 휴가 가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일상이 휴가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일상의 무대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한다.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하기도 한다.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은 '여름' 다음 바로 '겨울'을 맞게 하지 않았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게 하였기에, 오늘 땅 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했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진다.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 게 없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없고,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누릴 수도 없다. 자연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 이었다고.' 어제는 이렇게 "폴꽃을 생각하는 저녁"이었다.

풀꽃을 생각하는 저녁/이만섭

어느 저녁은

풀꽃을 위해 달이 뜬다

적막 속에서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있어

산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 달래듯이

무화과나무 아래서도 풀꽃은

고즈넉이 피어 있다

낮 동안 일광에 가려진

조그맣고 어여쁜 얼굴을 위로하며

손 내미는 달빛은

이슬 매단 풀잎의 창을 열어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어떤 사랑이 아무도 몰래

머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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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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