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인사동에서 만나자 ... 덕주출판사 刊

이만주 승인 2024.09.01 20:26 의견 0
이만주 문예펴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인사동에서 만나자> 덕주출판사 刊

올해가 아니라 작년이었던 것 같다. 인사동의 노르바(노+조르바)인 ‘갤러리 씨네’ 노광래 부장이 인사동에 대한 책을 기획해, 내려고 하니 원고를 하나 쓰란다.

책의 의도와 편집 방향이 뭔지도 몰랐다. 아무튼 인사동의 경험을 한번은 나 나름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고 보니 200자 원고지 70여 장 되는 긴 글이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작년 아니면 올 상반기에 나올 줄 알았던 책은 지난 11월 중순에 발간되었다. 나는 전남 해남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출판기념회에는 참석 못하고 책을 택배로 받아 보았다.

놀라웠다. 책이 예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소설가 윤후명, 미학자 유홍준, 화가 김구, 황주리, 민화가 서공임, 가수 남궁옥분, 나 이만주 등 34명이 필진으로 참가해 인사동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을 소개한다.

수십 년간 인사동 사진을 찍어온 김수길 작가의 사진들을 주로 사용하여 인사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사이에 인사동을 대표하는 갤러리, 고미술점, 필방과 표구사, 공예품점, 카페, 식당에 대한 사진과 안내문을 집어넣어 일종의 ‘인사동 바이블’ 같은 책이 탄생한 것이다.

책을 편집하고 만든 사람이 출판 및 편집 경력 30년의 최향금 씨라는데 당분간 인사동에 관한 한, 이 <인사동에서 만나자>를 넘어설 책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

* 내 글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는 제일 앞에 실렸다. 긴 글이므로 부분, 부분 발췌해 싣는다.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

이만주 / 춤비평가, 시인

어느 정도 인구가 되는 유명 도시에는 중심 번화가가 있다. 그런가 하면, 무언가 정감 있는, 그 도시만의 특색을 갖는 거리나 지역이 있게 마련이다.

파리의 경우, 화려한 중심대로인 샹젤리제 대신 ‘생 제르망 데 프레’와 그 옛날,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무페 타르’ 같은 지역이 그런 곳일 테다.

뉴욕시의 경우는 정감 있는 지역이 20세기 초중엽에는 ‘그리니치 빌리지’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는 그 기운이 소호(Soho)로 넘어왔다. 필자가 파리나 뉴욕에 머물던 것도 퍽 오래 전 일이니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도시, 파리, 뉴욕의 사랑 받는 구역은 또 다른 곳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도시에 그러한 구역이 형성되는 것은 그곳에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스런(?)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드나들고 모여들어 예술적 분위기를 일구어놓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인사동이 그런 역할을 하는 구역이 되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정확히는 관훈동 등 여러 동으로 이루어지고 인사동 가까운 북촌 입구들도 인사동으로 침)에는 끊임없이 여러 문인들과 예인들이 드나들고, 그러다 보니 이루어진 독특한 분위기에 끌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40~50년 전, 논밭이었던 강남이 팽창할 대로 팽창하고 화려해져 뉴타운이 되었다. 그 이후, 현대 도시풍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최신의 트렌드를 즐기는 젊은이들은 강남으로 몰린다. 하지만 예스러움에 집착하거나 보헤미안풍을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인사동을 찾는다. 세상이 계속 변하는데 인사동이라고 어찌 바뀌지 않겠는가마는 인사동은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하다.

~중략~

오늘날의 ‘인사동시대’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광복 이후 또 한국전 휴전 이후, 서울은 ‘명동시대’였다. 당시 많은 작가, 예술가들이 명동을 드나들며 탤런트 최불암의 모친이 했다던 ‘은성주점’과 공초 오상순이 줄창 줄담배를 피며 앉아 있었다는 ‘청동다방’ 등 몇몇 다방을 중심으로 모여 그들의 에너지와 아우라(aura)로 예술적 분위기를 만들었으리라. 명동백작이라 불리었던 이봉구 외 김수영, 박인환, 전혜린 등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명동시대를 수놓았던 것이다.

~중략~

서울의 명동시대는 1960년대 끝난 것으로 회자되는데 그 이유가 왜인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중략~

‘인사동시대’ 개막은 사람에 따라 주장이 다르지만 필자는,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1985년, 작은 찻집 ‘귀천’을 인사동에 열면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귀천’은 인사동이 개발되기 전, 좁디좁은 골목에 있던 작은 찻집이었다. 원목 테이블에 통나무 토막 낸 것이나 엉덩이를 간신히 얹을 수 있는 작은 의자들만이 있었다. 모두 끼어 앉아야 열댓 명도 앉을 수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중략~

‘귀천(목순옥 여사도 돌아가셨고 귀천은 장소를 두어 번 옮겼음)’ 다음으로 인사동에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집이 ‘귀천’에 손님으로 드나들던 L이란 여성이 연 카페 ‘평화만들기’였다. 인사동의 전성시대가 이곳에서 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리영희를 비롯하여 신경림 등 실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평화만들기’를 드나들었다.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많았으나 보수측 사람들도 드나들었다. 이름의 뜻 ‘평화 만들기’대로 카페 ‘평화만들기’는 좌우가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이 카페를 ‘공동경비구역, JSA’라고도 했다.

‘평화만들기’는 처음 인사동 주도로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간 2층에 있다가 낙원동 큰길에 가까운 골목, 후미진 귀퉁이로 옮겼다. 먼저와 다름없이 고 김근태 의원이라든가 유명 소설가 등이 손님으로 드나들었다. 그 후 주인이 서너 번 바뀌다가 음식점이 된 후,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카페 ‘평화만들기’는 필자에게는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다. 처음 ‘평화만들기’가 개업할 때 어느날 술이 취해서 들렀더니 인사동을 드나들며 알게 된 여주인 L이 “오빠! 개업 기념으로 피아노 한 대 사줘” 했다. 잔뜩 취해 있던 나는 “야, 그까짓 피아노 한 대 못 사 주겠냐. OK다, OK다” 대답을 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깨어 생각하니 지난 밤, 술김에 호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취중약속도 약속인지라 지키고 싶었다. 피아노 가격을 알아보라 하니 새것은 그 당시 가격으로 200~300만 원이었다. 그 금액은 당시 나에게는 힘에 부치는 액수였다. 그래서 중고를 사주기로 했다. 그때 마침 괜찮은 원고료가 들어왔다. 나는 낙원동 피아노가게에 직접 가, 60만 원짜리 중고 피아노를 구입해 배달시켰다. 날을 잡아 ‘피아노 증정식’이란 구실을 내걸고 파티도 했다.

이 일화는 카페에 와서 직접 확인한 여성 방송인 L에 의해 ‘취중약속을 지킨 사나이의 이야기’로 ‘한국경제신문’ 1면에 칼럼으로 소개되었다.

‘평화만들기’는 골목 귀퉁이로 옮긴 후에도 창업자인 여주인에 의해 계속 운영되다가 주인이 몇 번 바뀌었다. 마지막에는 이름이 ‘도향’이 되었다. ‘도향’의 여주인도 인정 있고 사리를 분별하는 여인이라 나는 가끔 드나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뜻밖의 귀인을 만나게 되고,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상대방 역시 그 집에 손님으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나의 그림 같지도 않은 현대판 문인화(文人畵), ‘귀천(歸天, 천상병의 시를 선線으로 그림)’을 사 주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더니 나를 돕기 시작해 내 첫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은 전적으로 그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그 후로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예로, 어느 날 내가 구닥다리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을 보더니 청을 한 것도 아닌데 “형님, 노트북 바꿔야겠다” 하면서 상당 금액을 주는 배려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만 혜택을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통 크게 도와주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는 무주상보시를 베푸는 살아 있는 보살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컬럼비아대 출신의 거시경제학자 W박사다. 우리는 지금은 형제지간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라진 카페 ‘평화만들기’가 나에게는 더욱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중략~

이 글의 제목은 ‘우리들의 인사동 시대’이나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것이 내가 경험한 ‘나의 인사동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중략~ 한 개인이 경험을 해봐야 얼마를 경험했을 것인가? 각자에게는 ‘각자의 인사동’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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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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