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동인천역, 1973

박미산 승인 2024.09.01 23:26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동인천역, 1973 /박미산

닥터 지바고, 졸업, 러브스토리, 키네마극장에서 함께 본 그들은 의사, 약사, 혁명가, 시인, 소설가로 다가가는 장미였고 화수조합에서 숫자놀음을 하는 난 찢어진 아카시아였다

아카시아도 장미도 디제이에게 쪽지를 건네주던 별 다방, 짐 다방, 카펜터스의 Close to you를 따라 부르며 별빛 같은 푸른 눈을 가진, 머물고 싶은 그 사람을 기다렸다

한 달 치 월급을 한꺼번에 마셔버린 로젠켈러 우린 비틀스의 Let it be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호연지기를 키우던 동인천역 주변은 우리의 우주였다

오전 일곱 시 풍경은 건방지고 아름다웠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학교로 가는 그들, 장발을 휘날리며 가는 그들, 난 한 편의 시와 어울리지 않는 주판알을 품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빈혈 앓는 노란 개나리 통통 튀는 열정 장미를 껴안은 답동성당 종소리는 한밤중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미풍 미원 간판도 쓰다듬어주었다

칠십 년대 통금이 있던 동인천역, 내일의 향기를 모르는 아카시아였지만 만개의 은밀한 몽상을 키운 나의 화양연화, 그곳

......

나는 예비고사, 본고사를 보고도 대학엘 가지 못하고 화수조합에서 경리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책임져준 오빠들이 그때 마침 군대에 갔고 내 아래로 동생 셋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지만, 동생들 때문에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인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산과 부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퇴근 후에 경리학원을 다녔다.

한 달을 다니고 나니 웬만큼 부기를 기재하고 주판알을 튕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모두 다 대학에 다녔다.

친구들은 찬연히 피어나는 장미였고 나는 찢어진 아카시아였다.

날지 못하고 시궁창에 빠져버린 용인 나는 콤플렉스에 시달려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무렵 약학과에 다니는 친한 친구가 회사로 찾아왔다.

친구랑 간 곳은 동인천역 앞에 있는 짐 다방이었다.

짐 다방은 DJ가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 감상실이다.

그 다방엔 DJ가 있어서 쪽지에 신청곡을 적어 주면 DJ가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었다.

짐 다방엔 대학 1년생인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미팅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섞여서 첫 미팅을 했다.

미팅을 끝내고 우린 다른 건물 3층에 있는 삼공탁구장에서 편을 짜서 게임하고 난 후 생맥줏집으로 향했다.

내 파트너보다는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의 눈빛도 나를 향해있었다.

며칠 후에 회사로 전화가 왔다.

그 친구였다.

...*** 필자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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