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우리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그것을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단일민족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여러 사학자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에 따르면, 우리 한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합쳐져 형성된 민족이다. 북방계와 남방계는 그 기원이 서로 다르다.
먼저 북방계는 지금의 중국 요동지역에 살았던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들이 북방계의 우리 조상이자 한민족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먼 과거를 얘기할 때 ‘옛날에~’ ’예전에~‘ 하는 것은 예족이 살았던 시기에 비유할 정도로 오래 전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족과 맥족을 합쳐 예맥족이라고 말하는데 이들의 기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약 1만 5천 년 전, 몽골초원에서 태동해서 약 8천 년 전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차츰 이동했다. 몽골초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드넓은 만주지역이었다. 동쪽은 동해안까지, 서쪽은 중국의 요동, 요서지역까지 광활했다.
한반도에서 볼 때, 만주지역 중부, 한가운데의 넓은 땅에는 예맥족이 자리잡았으며, 서부지역은 거란계 부족이 자리잡고, 동쪽은 여진계 부족이 차지했다. 드넓고 비옥한 중부지역을 차지한 예맥족의 일부는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진출했다. 드디어 우리 북방계 한민족의 모태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한반도에서 바라볼 때, 예족은 만주 중부지역의 동쪽에, 맥족은 서쪽에 터전을 잡았다. 그들은 서로 인접해 있었으며 경계는 강이나 큰 내(川) 또는 가로막힌 산이었을 것이다. 규모는 예족이 훨씬 더 컸으며, 예족은 농경, 맥족은 목축이 주업이었다. 쉽게 말하면 예족은 농경부족이었고 맥족은 목축을 하는 기마부족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예맥족뿐만 아니라 거란계, 여진계, 몽골계, 돌궐, 말갈, 흉노 등, 여러 부족들이 서로 뒤섞여 살았다. 그 시기에는 국가가 없었기에 국경도 없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부족들이 교류하며 남녀가 짝을 맺었다.
우리 인류는 모두 한 어머니의 후손들이지만 뿔뿔히 흩어져 살면서 저마다 정착한 지역의 기후와 환경, 먹거리 등에 따라 그것에 적응하기 위한 유전자 변이가 이루어져 피부색깔이 달라지고 체형과 체질이 달라졌으며 부족, 민족을 형성하면서 혈통이 달라졌다. 줄여 말하면 거란계, 여진계, 몽골계, 흉노계 등은 예맥족과 형성 기원과 혈통이 다른 부족들이다.
예맥족 남녀와 이들 여러 부족 남녀가 짝을 맺으면서 적지 않은 혼혈의 후손들이 태어났으며 예맥족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흡수되고 동화됐다. 그들뿐 아니라 요동, 요서지역에 살던 중국의 일부 한족(漢族)들도 예맥족의 남녀와 짝을 맺어 혼혈의 범주가 더욱 다양해졌다.
우리 상고사(上古史)에 단군신화와 고조선 건국신화가 있다. 역사적 사실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두 신화는 그 뿌리가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잘 알려져 있듯이, 하늘나라 천제(天帝)의 아들 환웅(桓雄)이 3천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백성들을 다스리며 웅녀(熊女)와 혼인해서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았다.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고 칭했다는 것이 두 신화의 골자다.
그렇다면 환웅과 그의 무리들은 누구일까? 천제의 아들이라는 것은 신화적 요소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사학자들의 견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남쪽으로 내려 온 부족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중국 황하(黃河)유역 앙소문화권(仰韶文化圈)에서 청동기 문화를 가진 부족이 북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환웅은 청동기 문화를 지닌 집단의 우두머리로 3천여 명을 이끌고 예맥족의 거주지역에 들어온 외부세력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면 환웅과 그의 집단은 순수한 예맥족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청동기 문화를 지니고 있어서 3천여 명이라는 적은 숫자였지만 예맥족 사회의 지배계급이 돼서 나라를 세웠다. 중요한 것은 환웅의 집단이 어디서 왔든, 예맥족과는 다른 부족으로 그들과 또 한 차례 혼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예맥족의 일부는 차츰 남하해서 한반도의 한강 이북까지 내려왔다. 그러면 한반도, 특히 한강 이남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남방계인 한족(韓族)이다. 한족은 북방계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약 6~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경로는 크게 세 갈래의 경로로 나눠 볼 수 있다. 북서쪽으로 이동해서 유럽으로 진출한 무리, 북동쪽으로 이동해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동한 무리, 남동쪽으로 이동해서 해안을 따라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호주까지 진출한 무리가 그것이다.
우리 한민족 북방계인 예맥족은 시베리아, 중국북부지역으로 진출한 무리가 몽골을 거쳐 차츰 남하해서 지금의 중국 요동지역과 만주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형성된 부족이다. 그러나 남방계는 인도와 남아시아로 진출했던 무리 가운데 중국 남동부의 해안을 따라 북상했던 무리에 속한다.
이들은 남아시아를 거치며 크게 나눠볼 때 아시아 5개 종족의 시원(始原)이 됐다. 약 1만8천 년 전, 빙하기가 절정이었을 때 중국대륙, 일본, 한반도는 서로 붙어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무리가 중국대륙 남동부 쪽으로 이동하다가 육지 또는 얼어붙은 바다를 이용해서 일본,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진출했다. 일본의 규슈에서 약 3만 년 전 인류진출의 흔적이 발견돼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 5개 종족 가운데 어느 종족의 일부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해서 정착하면서 그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부족을 형성한 것이 우리 한족(韓族)이다. 최근에는 베트남과 우리 한족의 유전자가 매우 흡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예맥족과 한족은 근원적으로 뿌리가 서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남하하는 예맥족과 한족은 서로 뒤섞이게 됐고 역시 그들 사이에 혼혈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예맥족과 한족이 합쳐져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만 참고하더라도 우리 한민족에는 다양한 피가 섞여 있어 순수한 단일민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민족의 DNA를 분석해 보면 약 20%의 다양한 유전자가 섞여 있다고 한다.
하기는 세계의 어느 민족도 순수한 단일민족은 없다고 한다. 아니, 인류의 이동과 끊임없이 이어졌던 정복전쟁 등을 볼 때 단일민족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 민족이 약 80%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한다. 80%정도의 동질성이 있으면 단일민족을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우리나라도 국제결혼이 보편화되면서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우리 한민족은 더욱 단일성과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단일민족이라는 긍지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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