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컬쳐인사이트] 9월의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어

이홍석 승인 2024.09.02 15:36 | 최종 수정 2024.09.02 20:08 의견 0
이홍석 문화평론가, 작가[사진=더코리아저널]


[이홍석 컬쳐인사이트] 9월의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어

-닥터 코브의 포토에세이 한 편

아타카마 사막처럼 불타던 8월을 보내고, 기대 없이 시작된 9월의 첫날은 유난히 푸르고 빛나는 하늘이 도시를 덮으며 그 풍경을 시작한다.

[사진=이홍석]

옅은 초록 필터를 함께 드리운 듯,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바라보던 20세기 뉴욕의 하늘, 아니 그의 캔버스에 해석된 그만의 하늘이 더 옳을지 모르겠지만, 21세기 그리고 9월 이곳의 하늘 또한 그처럼 몽롱하다.

좋은 시작이다.

“You will never get what you want until you are grateful for what you have”

우리가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기 전까지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이 '아름다운 사실',

마을의 구석구석을 걷다 오래된 만둣집에 들러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문지에 말아주는 만두를 기쁜 마음으로 챙기고, 가까운 산을 오르며, 우리의 9월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러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고귀함으로 시작됨에 감사한다.

[사진=이홍석]
[사진=이홍석]


만두를 만들며 중년이었던 그들은 스스로 노인이 되었고, 만두로 끼니를 챙기고 책을 읽던 청년이었던 나는 역시 스스로 중년이 되었다.

눈부신 9월의 첫날 30년은 그렇게 선물처럼 도시의 낮은 곳에서 우리가 하나의 인류임을 확인하여 주었고, 어쩐지 세상에 좀 더 관대해져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두를 나눠 먹는다.

세상은 나의 밖에 있기도 하고 또는 나의 안에 있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에 좀 더 따뜻하고 관대한 인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포섭된 내가 아닌, 내가 포섭한 세상을 향해 다시 걸으라 9월의 첫날은, 수천만 개의 상처 받은 꿈들이 여전히 꿈을 꾸는 거대한 도시, 그 도시의 골목 골목을 푸르게 덮는다.

나도 오래된 나의 상처에, 세상에 꺾여버렸던 꿈에 ‘호퍼의 붓’을 빌려 2024년 9월의 풍경을 덧댄다. 이렇게만 늘 푸르기를, 우리가 우주에 머물렀던 이유가 매우 특별하진 않았어도 끝내 고귀하였기를.

글 · 사진 이홍석,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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