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만보] ‘강유가람’ 감독의 첫 극영화 <럭키, 아파트>

이만주 승인 2024.09.15 17:24 의견 0
이만주 문예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강유가람’ 감독의 첫 극영화 <럭키, 아파트>

여자 끼리 키스하면 무슨 재미람!

하지만 그런 소리는 무식과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다. 강유가람 감독의 <럭키, 아파트>는 한국 영화로서는 드물게 또 과감하게 두 레즈(lesbian)의 삶을 여성 감독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페미니즘 영화다. 하지만 사실은 페미니즘 영화를 뛰어넘은 잘 만든 빼어난 극영화이다.

오랜만에 ‘전주’행을 결행했다. 이번 전주행의 목적은 9월 7일 토요일, 중앙동 4가에 있는 신비스런 갤러리, ‘동이문화유산갤러리’(성원시티타워 14층)에서 열리는 ‘한국 옛식자재 大전시’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9월 6일, 하루 일찍 전주에 내려온 나는 언젠가 광주에서 스치며 전화번호만을 얻은 전주의 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주에 왔으니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그랬더니 자기는 오늘 오후 7시에 전북여성영화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하니 같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 예약하지 않은 관객은 현장에서 표를 얻을 수 있으니 6시 50분까지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영화 상영 동안, 여인을 기다리면서 혼자 막걸리나 마시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래도 영화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는 늦지 않으려고 내가 머무는 숙소 근처 ‘보군고와 보선고 옛터’를 출발하여 ‘메가박스 전주객사점’까지 전라감영4길과 전주객사4길을 숨가쁘게 달렸다. 도착하니 정확히 6시 50분이었다. 하지만 7시 거의 다 될 때까지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혼자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내가 볼 영화가 어떤 종류의 영화인지, 제목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상연 전, 빠르게 리플렛을 훑어보았다. 영화는 ‘희허락락(喜Her樂樂)’과 ‘어디에 있든 나는’이라는 슬로건 아래 9월 5~7일까지 열리는 ‘제17회 전북여성영화제’ 두 번째 날, 두 번째로 상영되는 <럭키, 아파트>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제 나 자신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재미있는 연극, 춤, 영화를 보더라도 3분의 1 내지 반은 졸면서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럭키, 아파트>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졸지 않고 또렷한 정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그만큼 영화가 나를 작품 속으로 몰입시켰다는 얘기다.

여자 주연 두 명이 유명 여배우가 아닌 이제 새내기들인데도 나를 영화 끝까지 붙잡아 맨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영화가 특별나고 문제작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감독의 능력과 연출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두 명의 주인공인 레즈 커플 영끌족, 선우(손수현 분)와 희서(박가영 분)가 작은 서민 아파트를 장만한다. 하지만 선우의 예기치 못한 실직으로 희서 혼자 대출이자를 떠맡게 되자 둘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한편 실직과 다리 부상으로 오랜 시간을 아파트에 머물게 된 선우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악취로 시달리며 신경이 예민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바로 아래층에 살던 늙은 여인이 고독사한 것이 원인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사회에서 유족들에게 쉽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또한 모든 것은 관계법령에 의해 집행되기에 곧바로 시신이 처리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유족의 동의 없이는 유품은 물론 쓰레기조차 치울 수가 없다.

악취에 시달리는 선우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아파트 관리소는 물론 아파트 주민 여러 사람과 마찰을 일으킨다. 무엇보다도 희서가 그리도 꺼리는 동성 커플의 비밀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동성연애자가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이거나 특수한 환경이 특정인을 몰아간 결과라고 한다. <럭키, 아파트>는 구태여 분류하자면 페미니즘(feminism) 영화이기에 사회로부터 경원시, 백안시 당하는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또한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여성의 관점에서 다루며 관객들에게 가르침의 효과를 준다.

하지만 영화는 페미니즘에서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여러 담론들을 파헤친다. 가족과의 단절, 이웃과의 단절, 고독사의 문제, 인간적인 주거가 아니면서도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아파트 선호 현상, 배금지상주의(mammonism)에서 비롯되는 아파트 가격 하락에 대한 거주민들의 예민한 반응 등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각본을 직접 쓴 감독은 다양한 연출의 묘를 구사한다. 반전(反轉)과 선의(善意)의 페인트(feint) 기법을 보였다. 스릴러물 영화처럼 섬뜩한 장면을 적잖이 깔아놓아 관객에게 전율과 공포를 느끼게도 했다. 흥미를 끄는 큰 사건이나 특별한 눈요기감이 없는 내용을 끌고 나가면서도 관객으로하여금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연출력이 실로 놀라웠다.

그런데 무엇보다 깊은 감동을 주는 점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휴머니즘의 끈을 놓지 않고 전개되어 나가는 점이다. 영화의 끝, 두 주인공이 아파트 옆 숲속에 자그맣게 땅을 판 다음, 유품 중에서 어렵게 찾은 독거사한 늙은 여인의 사진 위에 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장례를 치른다. 몰인정한 현대사회의 삭막함을 녹이는 휴매니티의 절정이었다.

현대 한국사회를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들의 역, 그러면서 퀴어(queer)인 선우와 희서의 삶을 소화해 낸 두 여배우, 손수현과 박가영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앙상블이 영화를 더 살렸다.

영화가 끝난 후, 한 시간 가량, ‘시네 토크(cine talk)’ 시간이 있었다. 강 감독은 상의로 후줄그레한 남성용 하얀 와이셔츠 같은 것을 입고 나와 후줄그레한 느낌을 주었는데 나중에 인사하느라 가까이서 보니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부상당한 다리로 연기하느라 힘들어 보였고, 레즈 분위기를 주느라 짧게 깎은 헤어 스타일로 여성 아닌 중성처럼 보였던 손수현도 실제로 보니 여배우 특유의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번 작품이 강유가람으로서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수 편 찍은 후 처음으로 만든 극영화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나는 우연히 중요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행운을 만난 것이다.

영화 <럭키, 아파트>와 강 감독은 중요 영화제에서 큰상들을 탈 것 같고, 계속 나아가면 그녀는 앞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Director Kang! YOU SHOULD BE. YOU WILL BE•••

[사진=이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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