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청평사

박미산 승인 2024.09.15 21:23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청평사

삼십 촉 백열등을 반으로 나눈 노량진 여인숙

밤새 손을 맞잡고 뜬눈으로 지새운 당신

방에 가지런히 놓였던 당신과 나의 신발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뒤꿈치를 마지막으로 본 건 입영 전날

눈 쌓인 전나무를 눈물이 후려치던 날이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엔 두 개의 길만 있었어요

안개처럼 소리 없이 쓰러지든가

늪과 계곡처럼 범람하든가

푹 익은 나무 사이로

8월이 올곧게 걸어옵니다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는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추억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천년을 흐르는 영지 속 오봉산은 그대로고

계곡물은 들숨 날숨을 염치없이 연신 내쉬고

그때 그 전나무들은 그늘을 드리우며 중얼거리고

상사뱀은 여전히 당신을 찾으며 붉게 출렁거리고

눈을 감으니 모두가 당신이에요

몸속 깊이 새겨진 문신처럼

떨어지지 않는

첫,

......

나의 첫사랑은 스무 살에 찾아왔다.

나와 동갑인 그는 J대 약대를 다녔고 나는 직장인이었다.

스무 살은 얼마나 풋풋한가?

1970년대는 생맥주와 통기타, 장발,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맥주를 처음 먹은 것도 그와 함께였고, 산낙지를 먹은 것도 그와 함께였다.

산낙지를 어떻게 먹느냐며 돌이질 하는 나에게 입천장에 달라붙지 않게 낙지를 깻잎에 싸서 입에 넣어준 것도 그였다.

그 시대 연인들은 주로 걸어 다녔다.

재건 데이트라고 부르면서 걷거나 등산을 가거나 탁구를 쳤다.

탁구 치고 나서 맥주 한잔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지금 아무리 맛있고 비싼 맥주를 마셔도 그때의 맥주 맛만 못하다.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린 청평사를 가기로 했다.

70년대 인천에서 청평사를 가려면 동인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에서 청량리로 갈아타고

그곳에서 춘천행 기차를 타고 춘천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소양호로 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왕복 여덟 시간 정도 걸렸으니 아무리 새벽에 출발해도 인천으로 돌아오기가 빠듯했다.

청평사에서 오후 다섯 시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영등포에서 인천 가는 기차가 끊어졌다.

우린 그의 학교 근처에 있는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그 여인숙은 신발을 방안으로 갖고 들어가야 했다.

천정이 뚫린 방 두 개 사이에 30촉 전등이 희미하게 이부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 사이엔 두 개의 길만 있었다.

안개처럼 소리 없이 쓰러지든가,

늪과 계곡처럼 범람하든가,

...*** 필자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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