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유대인은 왜 그리 미움을 샀을까

김대웅 승인 2024.09.15 21:26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유대인은 왜 그리 미움을 샀을까

1948년 유대인들의 민족국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나라가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다.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라고 한다. 약 3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면서 그들이 살던 땅과 나라를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국가에서 소수의 타민족으로써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때로는 차별과 멸시 그리고 항상 미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특히 유럽에서 적대감과 증오의 대상이 되고 미움을 받게 된 근원에는 매우 긴 역사가 깔려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一神敎)는 인류 최초로 신(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아브라함을 자기들 종교의 최고 조상으로 숭상하는 뿌리가 같은 종교다. 따라서 ‘구약성서’는 세 종교의 같은 경전이며 예루살렘이 똑같은 성지다.

다만 유일신을 유대교는 야훼, 기독교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 7세기에 탄생한 이슬람교는 알라로 부른다. 또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아들로 숭배하며 복음(福音)을 믿고 따르지만, 유대교는 ‘경전’이 없다. 그 대신 그들의 ‘율법(律法)’을 철저히 지키며 모세를 교조로 숭상한다. ‘율법’에는 우리도 잘 아는 ‘탈무드’를 비롯해서 몇개가 있다. 알다시피 모세(Moses)는 ‘구약성서’에 따르면 애굽(이집트)에서 핍박받던 유대민족을 탈출시켜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이끌었으며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그들에게 전한 인물이다.

기독교는 기원후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창시돼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로부터 분리됐다. 더욱이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를 겪을 때, 유럽에서 가혹하게 핍박받던 기독교도들은 AD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며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으면서 새 생명을 찾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교세가 유럽전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자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교리(敎理)에 견해차가 있는 여러 종파들이 분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여러 견해들을 수렴한 후,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확립했다. 삼위일체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하나라는 것이다. 성부는 하나님(하느님), 성자는 예수, 성령은 하나님이 행사하는 영적인 힘, 신자들이영적 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근본적인 힘을 뜻한다. 그래서 지금도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할 때 삼위일체를 뜻하는 성호를 긋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며 성호경을 읊조린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은 곧 유대교와 유대인의 박해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가 삼위일체를 부정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가 국교인 로마제국에 해롭다고 판단하고,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원 초,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던 가나안 지역은 로마제국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예수를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골고다(Golgotha; 히브리어로 ‘해골’이라는 뜻이며, 라틴어로는 갈보리Galvory라고 한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도록 명령한 것도 당시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폰티우스 필라테)였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총애를 받던 세야누스의 도움으로 유대 총독에 임명된 폰티우스 필라테는 삼니움족의 폰티이 씨족 출신인 로마 기사계급이었으며, 폰티우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생겨났다.

그림은 안토니오 시세리(Antonio Ciseri;1821-1891)의 『Ecce homo!』(1871). 폰티우스 필라테가 예수의 무죄함을(I find in him no fault at all.) 알았기에, '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 Behold the man!) 라고 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석방제시를 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자, 예수를 죽음으로 몰았던 로마인들은 무척 난처했고 크게 확장된 유럽의 기독교도들이나 여러 국가들도 로마를 비난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러자 그들은 곧 비난의 화살을 유대인들에게로 옮겼다. 예수의 거처를 돈을 받고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원로들에게 팔아넘겨 마침내 처형당하게 한 배신자 유다(Judas Iscariot)가 그들의 선조이며 유대인들이 예수 죽음의 장본인들이라고 몰아붙였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를 팔아먹고, 예수를 죽게 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미워해야 한다는 유럽인들의 집단의식이 점점 확산된 것이다.

자신들의 나라가 없어서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야했던 유대인들은 그들 민족의 근거지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가장 많이 정착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증오와 미움의 표적이된 유대인들은 그들이 정착한 국가에서 농토를 마련할 수 없었으며 관리가 될 수도 없었다. 농업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업이던 시대에 농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생계의 큰 위협이 됐다.

그리하여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그 당시 무척 천시했던 고리대금업자로서 살 길을 찾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급전을 빌려주고 고액의 이자를 받는 사채업자였다. 그 당시 기독교는 고리대금을 금지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발붙일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더 한층 미움을 받게 됐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거의 모두 자신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했는데, 신에게 선택돼 계율을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과 선민의식(選民意識)이 무척 강했다. 다른 민족이나 종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타적이었으며 우월감을 지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쳤다.

하지만 이미 유럽전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기독교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으로서 누구라도 예수의 가르침과 신성을 따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관용과 포용력을 공식화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선천적인 우월의식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유대교는 율법을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했지만 기독교는 누구든지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해서 유대인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업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으며 채무자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돈을 쓰지 않는 수전노였다. ‘수전노(守錢奴)’란 돈을 지키는 노예, 즉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 모르는 매우 인색한 사람, 지독한 구두쇠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활철학은 자신들의 생존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유럽인들에게 적개심과 증오심을 갖게 했다. 유럽 여러 나라의 통치자들은 유대인들이 악랄하게 벌어서 쌓아놓은 막대한 재산을 빼앗을 방안까지 생각하게 됐다.

예컨대, 12세기에서 13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에 걸쳐 100년 넘게 이어졌던 ‘십자군 전쟁’이 대표적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이 기독교도들의 성지순례를 방해하고 심하게 박해했다. 그러자 교황이 유럽의 군주와 제후들에게 예루살렘 탈환을 호소하면서 신앙심이 투철했던 기독교도들이 군대를 조직하고 전의를 불태우며 원정에 나섰던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그들은 국고와 세금징수 등으로 원정비용을 마련했지만 크게 부족하자 전쟁에 참여한 제후와 기사들이 유대인 금융업자들에게 큰돈을 빌렸다. 하지만 원정에서 돌아와서는 돈을 빌린 흔적을 없애려고 그들을 살해해버렸다. 수많은 전쟁을 이끌며 거의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 ‘사자왕’(獅子王)으로 불렸던 잉글랜드 왕국의 리차드 1세도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십자군 원정비용을 마련하려고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탄압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의 군주와 제후들은 유대인 탄압과 박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갖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배후를 유대인으로 몰아갔다. 프랑스는 앞장서서 “유대인은 프랑스의 적이다. 매점매석을 하고 신을 살해한 민족이다.”하며 반유대주의를 조장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선동으로 반유대주의는 더욱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아주 나쁜 이미지와 함께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대문호 영국의 세익스피어도 그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라는 인정사정없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를 등장시켰다. 그처럼 유대인들의 수전노와 같은 돈에 대한 집착이 이해관계가 얼켜있는 많은 유럽인들의 증오심을 자극하고 비난을 멈추지 않게 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을 보호해 줄 자신들의 나라도 없었고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조직도 없었다. 그들은 유럽에서 힘없는 약자일 뿐이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반유대주의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유행처럼 확산된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가 결합하면서 오히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은 더 한층 강화됐다. 특히 근대에 와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유대인 자본가들이 생겨났다. 예컨대, 유대인인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은 대를 이어 어마어마한 축재를 함으로써 대자본가가 돼서 유럽전역의 금융을 좌우할 정도였다. 더욱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업이 크게 쇠퇴하고 공업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유럽의 금융시장은 거의 유대인 자본가들이 장악하게 됐다.

오죽하면 나폴레옹까지 나서서 “돈주머니를 쥔 쪽이 아무래도 돈을 쓰는 쪽보다 유리하다. 돈에는 조국이 없다. 금융재벌은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고 해서 유럽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넘어 분노하게 했다. 그렇게 유대인은 유럽인들에게 모든 악의 근원으로 매도됐다. 또한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케롤>에 나오는 수전노의 대명사 스크루지(Scroog) 영감도 유대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한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철저한 민족주의자였으며 반(反)유대주의자였던 히틀러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승전국들에게 엄청난 보상을 해줘야 하고, 국가의 경제파탄으로 공황상태 빠지자 패전의 책임을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대중연설 능력이 뛰어났던 히틀러는 연설할 때마다 유대인을 비난하고, 독일인들의 최대 구성원인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해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더 한층 증오심이 고조된 독일인들은 닥치는대로 유대인의 재산을 약탈하고, 종교시설을 공격하고, 유대인들의 각종 공동체를 공격했다.

그에 따라 전쟁 패배의 분명한 책임과 고통은 갈수록 희석되고, 오히려 히틀러가 강조한 게르만족의 조상인 ‘순수한 아리아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크게 고조됐다. 그리하여 독일인들은 더욱 단결하고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저력이 됐지만, 그럴수록 유대인들은 고립되고 마치 인류의 적인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이 됐다.

영화 <25시>에서 순수 아리안 족 혈통조사(안면 계수)를 받는 루마니아의 산골 폰타나의 농부 요한 모리츠(안소니 퀸)

히틀러가 반유대주의자가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있다. 원래 히틀러는 화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의 재능을 노골적으로 폄하해서 화가를 포기하게 했던 교수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유대인들을 철저하게 미워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히틀러는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전쟁기간에 가공할만한 유대인 말살정책을 실행했다. 그 당시 유럽에는 약 900만 명의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무려 약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지금 이스라엘의 전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를 부정하는 등 기독교와 달랐던 유대교, 유대인들의 종교관, 그들의 선민의식과 우월감, 독점적인 금융업, 거대한 자본 등이 유대인 증오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으며, 유럽에서 견고하게 자리잡은 그러한 반유대주의의 집단의식을 교묘히 악용한 히틀러에 의해 대학살의 참혹한 비극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확산되자, 시온주의(Zionism) 운동을 펼쳤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기자에 의해, 시온주의, 또는 유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이 운동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그들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에 분노한 세계인들의 동정과 영국 등의 지지를 얻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팔레스타인과의 영토분쟁, 종교적 갈등으로 지금까지도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소개 / 김대웅

그는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와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1일 1지식>,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따 좋은 교양시리즈인 최초의 것들>, <영어잡학사전>,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그리스 7여신이 들려주는 나의 미래>, <커피를 마시는 도시>, <교과서 밖 한국사> 등이 있으며 편역에는 <배꼽티를 입은 문화>, < 반 룬의 세계사 여행>, <라틴어 격언집>(공역)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민 불복종.(공역), <한 권으로 쉽게 읽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공역) ,<루카치의 미학사전> 등이 있으며,

해설서로는 <숨겨진 그리스 로마 신화>, <플리니우스의 박물관> 등이 있으며,

동화번역으로는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 <터키 전래동화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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