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칼럼] 모든 것은 내면(內面)의 문제다.
참선(參禪)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참선은 선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기의 본래면목을 참구하는 불교 수행법이다.
간화선에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구하는 수행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 본래 면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구하는 것은 궁극적인 인간의 마음자리 즉 본성에 초점을 맞춘 깨달음의 공부이다.
참선(參禪)의 경우, 그 개인적인 시원(始原)을 찾는다면, 아무런 목적 의식이 없던 태내의 상태에까지 소급할 수 있다.
습(習)을 없애기 위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성불을 위하여, 등 등 의문을 갖지만 사람의 행동에는 반드시 뚜렷한 논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부터 뚜렷한 이론이나 목적 없이 덩달아 참선을 했으면서 왜 남에게 물으려 하는가?
참선이란 주로 간화선에서 화두, 곧 ‘무엇이 나인가?’와 같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수행법을 지칭한다.
이때는 몸과 마음보다는 제3의 관점인 인간의 본성, 본래면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참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요함과 지혜와 같은 특별한 마음 현상[別境心所]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궁극적인 인간의 마음자리[心地], 본성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참선은 깨달음의 공부법이다.
궁극적으로 禪이란 자신의 내면을 보는 작업이다. -
그러므로 밖으로부터 생기는 문제는 밖에게 물어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만 찾아야 하는 답도 있다.
당사자가 처한 상황, 이를테면 선사(禪師)의 지시에 따라 참선을 시작한 경우,
참선의 목적은 당사자에게 묻기보다도 그 지시자에게 물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태아가 처음 수태부터 출산될 때까지의 과정에 일어나는 현상만 보아도, 현재까지의 의학 박사 및 앞으로의 모든 박사가 밝히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나 태아였고, 그 이전에는 생식 세포였는데~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과정도 있다.
오늘날 참선과 명상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되어 혼란을 주기도 한다.
참선과 명상은 어떻게 다른가?
딱 잘라 정의하기보다 마음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전문 수행자들은 참선이란 용어를 더 선호하고,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일반 대중은 근래에 명상이란 용어를 훨씬 더 잘 사용한다.
논리나 지식 등의 언어에는 우주나 인생의 전모가 담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우주의 한 분자에 지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어나 에고에 우주를 담으려 할 만큼 어리석다.
禪이란 이론의 체계를 세우거나 정보를 축적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따위 구조물을 깨끗이 제거하려는 것이 아닌가?
禪이란 자신의 내면을 보는 작업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빛을 찾으므로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다.
"은산 철벽의 높은 장벽도 내 안에 있어 걸림이 없고
몇 겁에 쌓인 미혹의 어둠 한 빛 비취니 걷히는 도다.
어둠을 태워 빛을 얻으니 어둠과 빛이 어찌 둘이랴
어제를 밝혀 내일을 보니 테두리 속을 오고 감이네.
없어지고는 다시 생겨나 흐름의 한 점 잔상인 것을-
이 모든 것도 본래 비어서 한 생각 마 져 되돌아가네."
-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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