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일지] 독서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

박한표 승인 2024.11.02 10:11 의견 0
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독서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

매주 금요일은 오전에 도반들과 <<주역>>을 읽는다. 오늘은 <풍천 소축> 괘의 "구이"까지 읽었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으면 이해가 훨씬 빠르고, 다양한 관점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풍천소축> 괘는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하는 상이다. 군자가 이러한 기운의 양상을 보고 본받아, 문명과 문화의 덕을 아름답게 한다. 문명과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면서 천지 기운의 변화가 차츰차츰 이루어지듯이 문명과 문화의 발전은 조금 조금씩 이루어진다. 하늘 위를 지나치는 바람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구름을 휘몰아도 잠시 동안 축적시킨다. 무엇이든지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럴 때는 외면의 상황에 대해 행위 하는 것보다는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축적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괘의가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懿文畜德, 의문축덕)"이다. 지금까지의 괘의를 정리해 본다.

- 제1괘 <중지건>-자강불식(自强不息):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후덕재물(厚德載物):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창세경륜(創世經綸):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과행육덕(果行育德):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음식연락(飮食宴樂):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작사모시(作事謀始):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용민휵중(容民畜衆)-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오늘은 '독서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해 본다. ‘독서’가 부활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국 출판계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독서 열풍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6억6900만 권의 종이책이 판매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독서는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종이책 열풍을 다뤘다. 또한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미국에서 ‘독서 파티’가 새로운 사회적 커뮤니티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독서의 목적이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이 지식의 전달을 위한 도구라면 우린 이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독서할 이유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수단이 존재하고, 온갖 지식을 요약해 알려주는 동영상 등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서의 진짜 목적은 지성과 감성의 체험에 놓여 있다. 독서는 진실에 이르기 위한 수양 행위에 가깝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사고를 훈련하고 감수성을 단련함으로써 진실을 찾아가는 내적 여행을 한다. 사물과 사건을 깊이 생각하고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인간과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넉넉히 대하는 법을 학습한다. 독서의 기쁨은 대부분 내용의 파악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이끄는 내적 성장의 체험에 달려 있다. 이러한 체험 없이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나, 책을 읽게 된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독서라는 행위는 어떻게 우리의 뇌와 마음을, 그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로부터 알게 된 '책 읽는 뇌'에 대한 매리언 울프의 《프루스트와 오징어》을 보면, "읽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인지신경학자이다.

첫째, 책은 우리의 생각을 훈련시키는 도구다. '읽기'는 굉장히 독특한 현상이다. 인류는 읽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으나 인류 문명은 '읽기 능력'을 바탕으로 구조화 되었다는 거다. 그래 우리는 읽기와 떨어져 살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책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여가 시간을 보낸다.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고 검색할 수 있고 심지어 연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첫째, 책은 우리의 생각을 훈련시키는 도구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책은 별로 필요 없다. 그러나 책은 우리의 생각을 훈련시키는 도구이다. 몇 천 년 동안 인류는 책을 가지고 생각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생각을 확장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그 반대이다. 인터넷의 발달이 길어야 30년인데 그 기간동안 디지털로 사고를 훈련시키는 기술은 책과 비교하면 아주 떨어진다. 유튜브를 가지고 사고를 늘려가는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은 책을 읽어야 한다.

둘째, 책은 읽을수록 우리를 숙련된 독자로 만든다. 숙련된 독자는 책을 읽고 타자의 삶으로 연결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독자이다. 이야기는 타자와 나 사이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타인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

▪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가?

책을 읽고 이런 사고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숙련된 독자가 될 수 있다. 즉, 책을 읽는 일은 나를 형성하는 일이고, 내면을 확장하고 경험을 성숙시키는 수단이다. 반대로 이런 숙련된 독자가 부족하다면 우리 사회는 화합과 설득의 힘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 책을 읽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셋째, 책은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빨리빨리 지나가는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의 단서만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깊은 사고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은 필연적으로 느린 속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에게 휴식을 준다. 책이 진짜로 인간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쉴 수 있다. 천천히 쉬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멀리 까지 갔다 온다. 멀리서 살펴보는 힘, 관조가 우리 삶에 왜 중요할까? 우주는 무질서하다. 인간의 삶도 무질서하다. 인간도 무질서하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면, 어떤 연속성이 없다. 여기엔 질서가 없다. 책은 잠시 멈춰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게 하고 우리 삶에 특정한 목적이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정보를 빠르게 받아드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잠시 멈춰, 삶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삶이 풍성해진다. 매리언 울프는 책은 우리에게 초월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삶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우리를 숙련된 독자로 만들어준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책을 읽는 독서에 대한 찬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독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으로 칭송 받아왔다. 읽기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간의 인지 발달을 변화시켜 사고 능력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 등의 저서로 유명한 울프는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인해 책에 몰입하는 경험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주의 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저해한다고 우려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계절이 좋으니,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또한 모기도 없고,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밤늦도록 책 읽기 좋은 때이다. 왜냐하면, 가을은 ‘산책의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밖을 나서면 국화, 코스모스 등 가을꽃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벌과 나비는 꽃과 꽃 사이를 부지런히 넘나든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색을 갈아입은 나무와 숲은 새 떼로 수런거린다. 바람에 갈리는 갈대의 비명 날카롭고, 참새 떼 몰려다니는 들녘에선 한창 벼가 익어간다. 붉게 노을이 번진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인이 산책을 즐기는 이유다. 산책은 자연을 읽는 일이다.

독서는 ‘지식의 산책’이다. 책만 펼치면 자는 사람도 있다지만, 시인은 “습도와 조도를 유지”해 금방 책에 빠져든다. “외부와의 차단”은 가족이 다 잠든 한밤에나 가능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성벽의 나라, 골목과 오솔길의 나라”를 둘러보는 사이 먼동이 뜬다. 독서는 중독이다. 오늘 밤 시인이 읽은 책은 카프카의 작품 <<성>>이 아닐까? 하긴 읽은 책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뚫어지게 나를 보며 서 있”는 유대인을 만났는데. 시인은 ‘마음산책’ 같은 새벽기도를 드린다. 오늘 공유하는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다.

독서/김연숙

낡고 부드러운 쿠션에 코를 박듯 가볍게 국경을 넘어간다 일조량은 적으나 쾌적한 습도와 조도를 유지하는 이곳에선 숨쉬기가 편안하다 입국 이후 점차로 외부와 차단된다 숲으로 둘러싸인 성벽의 나라, 골목과 오솔길의 나라 도로표지판도 없이 골목이 골목을 가지 치고 샛길이 샛길을 사다리 탄다 방음벽이 두껍다 시계도 없는 이곳에서 눈 비비며 둘러보면 격자무늬 담 밖으로 먼동이 트고 격자무늬 담 밖에서 끼니때가 지나간다 이 친숙한 중독의 나라에서 후미진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으면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람과 마주칠 때도 있다 노동재해 보험국에 근무하며 처마 낮은 푸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만난 적 있다 모퉁이에 몸을 반쯤 감추고 유대인의 짙은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사진=박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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