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풍요로운 삶에도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매테를링크(Maurice Polydore Marie Bernard Maeterlinck;1862-1949)의 동화 『파랑새』(The Blue Bird;1908)를 읽어봤을 것이다. 가난한 나뭇꾼의 아이들인 틸틸(Tyltyl)과 미틸(Mytyl) 남매가 병든 여자아이의 행복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요정의 부탁을 받고 온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얘기다.
하지만 어린이 남매는 끝내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오두막집으로 돌아와 꿈에서 깨어보니 파랑새는 바로 침대 머리맡 조롱 안에 있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을 주는 빼어난 동화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목표는 그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행복추구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왜 풍요로운 삶에도 행복하지 못할까?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 예술가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론’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서도 스위스 사상가 칼 힐티(Carl Hilty)의 행복론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행복에 이르는 길은 외적(外的)인 길과 내적인 길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외적인 길에는 부(富)와 건강, 명예, 문화, 과학, 예술 등이 있으며, 내적인 길에는 양심과 덕성, 이웃사랑, 종교, 위대한 사상이나 그 같은 것들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외적인 것에는 반드시 결함이나 부족 그리고 충족되지 않는 조건들이 뒤따라 불안정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무소유’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무 것도 갖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만족한다면 그것도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 힐티가 말하는 내적인 행복보다 외적인 행복에 치중하며 그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서 그 범위를 좁힌다.
예컨대, 칼 힐티가 말하는 외적인 길의 명예, 문화, 과학, 예술 등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경지에 이르면 어느 정도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그보다는 성공, 성취로 생각한다. 그래서 변함없이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욕망충족과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욕망충족과 인정욕구에는 큰 함정이 있다. 욕망충족은 한계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성취되면 또 새롭거나 더 큰 욕망이 생기고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인정욕구도 마찬가지다. 인정욕구는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인정해 줘야 하며, 권력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돼야 인정욕구가 진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남들의 지대한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안간힘을 다한다.
다시 말하면 욕망충족이나 인정욕구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만족하기 어렵고, 따라서 자신이 아무리 풍요로운 생활을 하더라도 좀처럼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욕망과 인정에는 피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속성이 작용함으로써 행복감을 방해한다.
현대인의 속성은 무엇인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속성이 ‘비교심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항상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웬만큼 풍요롭고 만족할만 하더라도 남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면 상대적 빈곤감과 결핍김을 느끼며 불만족과 초조감을 갖는다. 그만큼 행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리더십 개발가인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Manfred F. R. Kets de Vries) 교수는 그가 쓴 『삶의 진정성』(원제: Sex, Money, Happiness & Death)에서 “일반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상향비교보다 하향비교를 더 많이 한다. 상황이 어찌되든 이들은 자신보다 더 안좋은 상황의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복 받았는지를 깨닫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자신보다 위를 쳐다볼수록 자신이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결핍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아래쪽을 내려다 봐야 한다.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들, 자신보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을 내려다 봐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이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쳐다보며 비교한다. 당연히 자신이 그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도 그가 쓴 『굿 라이프』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행복한 사람들은 관계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남과 비교하며 무엇인가 소유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은폐하거나 극복하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결과적으로 자신을 비관론자로 만든다. 비관적인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마틴 샐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도 “행복과 성공은 낙관론자들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자기 삶의 주체는 자신이고 행복의 주체도 자신이다.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며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덧 행복이 자기 곁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충족으로 행복을 얻으려 한다면 결국 끝없는 탐욕으로 욕구불만에 시달리게 된다. 영원히 한계가 없는 탐욕은 자신의 행복을 쫒아버린다. 앞서 소개한 <파랑새>가 주는 교훈처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삶이 풍요롭다면 지금 자신은 행복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을 즐겁게 한다면 그것 역시 행복이다. 배고픈 사람은 배불리 먹기만 해도 행복하다.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방에만 들어와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아주 작은 선물만 받아도 ‘I am very Happy!'를 연발한다. 그러한 작은 행복들이 쌓여가면 자신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하며 탐욕을 버려야 행복을 얻는다.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이 멀게 느껴지고 행복의 노예가 돼서 끊임없이 뒤쫒고 있는 것 아닐까?.
행복과 관련해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말은 되새겨 볼만하다.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신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창조했기 때문이다. 불행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는데서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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