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산중서재] 백석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임우기
수많은 백석 시 연구자들, 만편이 훨씬 넘는다는 논문과 관련글들 저술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4.19세대 비평가들 중 가장 시를 잘 분석 해석했다는, 나를 비평계로 인도하신 불세출의 문학평론가 故 김현 선생조차 백석 시의 뛰어남을 논하면서도 백석 시의 한계로서 샤머니즘을 지적했다(김윤식 선생과의 공저. <한국문학사>)
그러나 미안하지만, 김현선생의 이런 백석 비판은 그 자체로 서구식 근현대 문학이념과 기독교에 매몰된 김현 비평의식의 명료한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데에 불과하다.
서구 근대가 학살하고 말살한 샤머니즘을 혹세무민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으로 조작된 악의적 편견일 뿐아니라 김현 이후 특히 문지계열 비평가들의 주도로 광범위하고도 뿌리깊게 자리잡게된 '전통 정신 문화의 몰락', 비주체적 서구추종적 문학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페북에서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으므로 간단히 말해, 샤머니즘은 기독교와 대척하는 종교의식이거나 혹세무민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 역사적으로 진실한 종교문화라는 사실을 올바로 깊이 이해할 때, 백석 시의 대표적 시 형식인 시어의 주술성과 죽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해원하는, 인류의 오랜 조상인 샤먼의 언어와 정신에 비로소 접근할 수 있다.
백석의 심오한 문학정신을 이해하는 가장 심도있는 길은 전통 샤머니즘을 말살해온 서구 제국주의나 일본제국주의 세력과 그 앞잡이들, 또한 박정희의 독재적 새마을운동같은 폭력적이고 부패한 반역사적 반전통적 이념으로부터 구출해내는 이론적 노력과 문화적 실천을 동시에 펼치는 일이다.
짧게 말해 샤머니즘은 고통받는이 더 나아가 억울하게 죽은이의 영혼조차 위무하는 지극한 사랑과 생사의 구별을 초월한 연대의 문화로서 백석 시는 바로 이 샤머니즘의 <숭고한 이념>을 깊이 통찰하고 시로서 실천하였던 것이다.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운 것은, 내로라하는 이 땅의 비평가들이 서구의 개인적 '자유의지'나 프랑스의 유수한 시론이나 마르크스주의에는 혈안이 되어 환호하면서도 정작 인간 역사와 존재의 지극한 사랑의 이념인 전통 샤머니즘은 말살하지를 못해 여전히 안달이 나 있다는 사실. 비단 서구 제국주의와 기독교 세력에 의해 학살된 수천만명도 더 넘는 아메리카원주민들 중남미 민중들의 샤머니즘 역사말고도 이 조선땅에서도 전통 샤먼을 말살해온 역사는 음습한 그늘을 이루고 있다.
처음 고백이건만 나 개인적으론 이 심각한 샤머니즘 문제를 뒤늦게 알게되었을 때 문지계열 비평가 그룹에서 탈퇴를 결정한 직접적인 문학적 계기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오래된 이념으로서 샤머니즘의 정신적 숭고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백석은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동학을 창도하신 수운(水雲) 선생의 말씀 중, 인간 존재를 '最靈者'(만물중 가장 신령한 존재)로 설하신 바 있는데 이는 서구의 근대적 '이성인'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을 숭고한 영적 존재로 본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최령자'의 고태적(古態的) 존재가 바로 샤먼인 것이다.
백석 시는 <최령자로서의 인간 존재>를 통관(洞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학예술 관점에서 보면, 백석은 서로 시적 내용과 형식이 다르더라도 윤동주와 비견될 수 있고, 문학사적으로 시 정신의 깊이와 이룩한 높은 성취로 보면, 김수영 신동엽의 윗길에서 빛나는 조선 근대 최고의 시인이다! (출처 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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