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칼럼] 비교 행복론(幸福論)
동서고금 막론하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철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철학자들은 고유의 사색과 심도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았고 지금도 이 주제를 가지고 끝없는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고대 철학의 핵심주제는 행복이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행복을 논의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돈,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이 지식과 덕을 지닌다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여기서 지식이란 단순 지식이 아닌 영혼의 진정한 깨달음을 의미하므로, 소크라테스는 알면 행한다는 지행합일설을 주장이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대로 안 것이 아니며, 다시 말해 깨달음을 통한 참된 지혜를 갖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 명예, 쾌락이 삶에서 부분적 만족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삶이 최종 목적인 행복의 본질적인 개념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최종 목적인 행복이 완전성과 자족성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선이기 때문에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 고유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삶을 위해 덕을 쌓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며,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을 행복으로 보았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이라는 개념은 너무애매해서, 모든 인간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소망하고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한번도 스스로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의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즐거이 행하고 그 행한 사실을 즐거워한다는 인간은 행복하다.<칸트>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소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다.
사람은 흔히 큰 불행에 대해서는 체념을 하면서 조그만 기분 나쁜 일에 대해서는 억제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은 큰 불행보다도 사소한 것에 있다.
사소한 기분 나쁜 일들은 하루에도 몇번 씩 부딛치는 것이며 그 사소한 일들이 도화선이 되어 큰 불행으로 발전하는 일이 적지 않기 떄문이다.
“감정이란 그릇이 기울면 엎질러지는 물과 같은 것이니 늘 조심성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일단 기울면 평화의 조화가 파괴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울기 쉬운 순간에 억제해야 한다.”
< 알랑의 행복론 중에서 >
러셀이 생각하는 행복 비결은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갖되 자신이 관심을 갖는 모든 것에 가능한 한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기중심적 사고와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통해 행복의 원천을 늘려야 한다는 것으로, 행복의 원천을 늘리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내가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과 사물을 통해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예수는 당시나 현세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복론을 제시했다
성경에도 복에 대한 숱한 언급이 있는데 예수가 직접 언급한 것으로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팔복(八福)’이 있다.
팔복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등이 있는데 완벽한 사랑을 실천하면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 『서경(書經)』에 인간이 향유하는 다섯가지 복을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하였다.
오복(五福) 중 첫번째는 장수하는 것(壽)이고, 두번째는 재산이 넉넉한 것(富), 다음으로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康寧),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자신의 받은 명대로 살다가 죽을 때 편안히 돌아가는 것(考終命)을 들고 있다.
서경(書經)에서는 이 오복을 선량한 백성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욕구의 표현이다.
여기에서 서양과 동양의 행복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
서양에서는 개인을 위주로 하는 행복에 주안점을 두고 동양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행복관을 말하였다.
아들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명심보감>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학이(學而)편 1장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이 구절이 구체적인 공자의 행복관을 내포하고 있다.
공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가난한 사람도 가난을 즐기며 배움을 좋아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 선불교의 행복론은 비움의 철학이 핵심인 데 비해 서양철학을 대변하는 고대 그리스철학의 행복론은 채움의 철학에서 완성된다.
즉, 소승적 차원과 대승적 차원이랄까
여기서 말하는 大乘(대승)이란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
위로는 깨닭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불교용어로 보리(菩提)란? 깨달음을 나타내고, 그 깨달음을 얻는 지혜를 내포한며, 그 최고는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로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이라고 번역한다.
그리하여 불가(佛家)에서는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을 최고의 행복으로 추구한다.
- 합장 -
저작권자 ⓒ 더코리아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