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중구난방] 인간은 왜 인정받고 싶어할까

김대웅 승인 2024.12.01 22:08 의견 0
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인간은 왜 인정받고 싶어할까

1980년 12월 8일, 뉴욕 맨하탄의 어느 고급아파트 앞, 밤 11시 가까이 된 깊은 밤중에 불현듯이 적막을 깨며 다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 한 중년남성이 쓰러졌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피살된 남성은 누구일까?

그는 196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영국의 유명한 록밴드 ‘비틀즈’의 리더였던 존 레논(John H. Lennon)이었다. 아내 오노 요코(小野洋子, Yoko Ono; 1933-)와 함께 귀가하다가 기습적인 총격으로 쓰러진 것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경악하며 충격에 빠졌다. 존 레논은 1968년 오노 요코를 만나게 된 뒤, 69년 비틀즈를 탈퇴했으며 나중에는 결국 비틀즈도 해체됐지만 그는 오노 요코와 함께 여전히 맹렬하게 음악활동을 펼치고 있던 세계적인 스타였다.

살인범은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 1955-)으로 현장에서 별다른 저항없이 붙잡혔다. 총격 살인 후 채프먼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자 존 레논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변호사는 채프먼이 정신분열증의 정신이상자이니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판결을 앞두고 채프먼은 태연하게 자신이 존 레논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으며 스스로 유죄를 인정했다. 결국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있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왜 그랬을까? 그는 “하느님이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흥정해라.”하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등 정신이상자 같은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세계적인 스타를 죽임으로써 자신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채프먼처럼 헐리우드의 유명스타를 죽여 세상의 관심을 끌려고 한 사례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터무니없지만 그럴듯한 가짜뉴스를 올려 검색순위 1위에 오르면서 관심은 끄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그래서 그런 인간들을 ‘관종(關種)’이라고 부른다. 이는 ‘관심을 끌려는 종자’의 줄임말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충격적이거나 어이없는 짓으로 남들의 관심을 끌려고 할까? 한마디로 하자면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그런 짓을 해서라도 뭍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정욕구’란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적 욕구 또는 의식적 욕구로,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있다. 같은 무리 안에서도 서로 싸우고 힘을 겨루는 것은 자신의 힘을 인정받아 서열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이다. 동물들도 그러한데 뛰어난 지능까지 겸비한 우리 인간의 인정욕구는 인간, 저마다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인정욕구는 거의 한계가 없다. 가깝게는 나이 많은 사람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부모는 자식들에게, 자식 또한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이 크든 작든,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고, 가진 것이 많은 자는 자기보다 가진 것이 적은 자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이른바 ‘갑질’ 따위의 횡포를 부린다.

이러한 인정욕구의 근원은 생존본능에서 비롯된다. 어떡해서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갖가지 욕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욕구들을 자연적인 욕구(생리적 욕구)와 심리적 욕구(의식적 욕구)의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자연적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구와 같은 생리적인 욕구들이다. 배가 고프면 무엇인가 먹고 싶어지고, 졸리면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생긴다. 심리적 욕구 또는 의식적 욕구는 생존을 위한 본능은 아니어서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지만,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려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더 좋은 점수를 받으려 하고, 스포츠 선수들은 더 좋은 기록을 세우려 하고, 단체경기는 더 많이 이기려고 한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고 싶어한다. 나름대로 뚜렷한 인생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성취해서 인정받으려 한다. 그리하여 남들로부터 인정받게 되면 남다른 자부심이 생기고, 삶의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본능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러한 심리적이고 의식적인 인정욕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것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한 ‘결핍’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느끼는 결핍감을 채워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핍감에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부족하다는 상대적 결핍감도 있다. 따라서 인정욕구에는 정해진 기준이나 표준이 있을 수 없다.

이를테면 아주 사소한 인정욕구도 있다. 어느 젊은 여성이 남친을 사귀면서 자기 친구에게서 아주 괜찮은 남자다‘ ’잘 생기고 멋있다‘ ’정말 너하고 잘 어울린다‘고 인정받고 싶고, 직장에서 동료하고 싸웠을 때 ’넌 잘못이 없어‘하며 자기편을 들어주기 바라는 것도 인정욕구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정’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남들이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하고 경쟁을 해야만 하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인정욕구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이 뒤따르며 승부욕을 필요하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즉 승부욕을 통해 자신의 인정욕구를 해소하면 고통과 괴로움도 극복되지만, 그와 반대로 승부욕을 발휘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좌절감과 함께 더욱 큰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며, 남들과 서로 다른 욕구로 갈등하고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욕구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도 남들을 욕구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통과 괴로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승부욕이라고 한다면, 긍정적인 승부욕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 오지만, 부정적인 승부욕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고, 우월적인 위치에 서면 그것을 과시하듯 남들의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철학자 이정은 교수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행복은 이렇듯 인정욕구에 의해 좌우되므로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삶에는 자의든 타의든 온갖 고통과 괴로움이 수반된다. 더욱이 그러한 고통과 괴로움의 대부분은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욕망에서 오는 것이다. 인정욕구가 충족되면 당연히 행복하다. 인정욕구를 요약하자면 타인들로부터 ‘너는 쓸모있고 가치있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라고 정리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욕구다. 하지만 그것이 강요한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며 집요하게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남들에게 억지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와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 욕구가 지나쳐 욕심이 되고, 나아가 탐욕이 되면 남들로부터의 인정은 더욱 멀어진다. “내가 누군지 알아?”하며 스스로 자신을 과시하려 할수록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웃음꺼리만 된다. 그러면 어떡해야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역량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능력과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 예컨대, 꼭 해야 할 일이지만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일에 앞장서거나, 주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봉사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의로운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면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알아준다. 땅값이 뛰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보다 훨씬 더 ‘쓸모있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이어 이정은 교수는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켜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문제 삼을 때, 그 귀착점은 인간성의 실현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면, 진정한 ‘인간성의 실현’이 그것을 위한 온갖 노력의 밑바탕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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