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산중서재] '꽃피는 산골' / 김홍성
점봉산 남쪽 고원 쇠나드리 바람은 미친 바람. 소가 바람에 날아갔대서 쇠나드리라는데, 사람인들 못 날릴소냐, 양미리 도루묵 생선 보따린들 못 뺐을소냐, 사납게도 분다.
봄에는 흙바람, 여름에는 비바람, 가을에는 낙엽 바람, 겨울에는 눈보라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쇠나드리를 지날 땐 이승 저승이 오락가락한다. 이 바람이 언젠가는 경운기를 뒤집기도 했다지, 바람에 날아갈까봐 나무둥치를 껴안고 아이고 어머니 아니고 아버지 용을 쓰며 울기도 했다지......
강원도_인제군_기린면_진동리_설피밭_1989년
1980년 대 초부터 해마다 방문했던 동네다. 1989년 이후 다시 가 보지는 못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진동천을 따라서 펜션촌이 들어선지 오래 되었다. 사진은 어쩌면 1989년 이전일지도 모르지만 저 때까지는 인근 동네의 부인들이 모여서 당귀를 심고 있었다.(사진)
* 쇠나드리 바람
오늘 나는 수십 년 전 생선장수 아줌마가 됐다. 양양장 이튿날 신새벽, 양미리 도루묵을 한 보따리씩 이고 지고 육십릿길을 걸어간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두메산골을 찾아간다.
양양에서 논하리, 논하리에서 송천, 송천에서 공수전, 공수전에서 큰양아치 고개, 영덕 서림을 지나 허위허위 조침령을 넘는다. 좋게 말하느라 조침령이지, 남정네들은 좆침령이라 부르는 고개, 왜 이리 힘겨운가. 영마루 위에서 쉬... 소피 한 번 시원하게 보고 쇠나드리로 내려선다.
점봉산 남쪽 고원 쇠나드리 바람은 미친 바람. 소가 바람에 날아갔대서 쇠나드리라는데, 사람인들 못 날릴소냐, 양미리 도루묵 생선 보따린들 못 뺐을소냐, 사납게도 분다.
봄에는 흙바람, 여름에는 비바람, 가을에는 낙엽 바람, 겨울에는 눈보라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쇠나드리를 지날 땐 이승 저승이 오락가락한다. 이 바람이 언젠가는 경운기를 뒤집기도 했다지, 바람에 날아갈까봐 나무둥치를 껴안고 아이고 어머니 아니고 아버지 용을 쓰며 울기도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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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양양 생선장수의 도루묵이나 양미리는 생선이 아니라 약이었다. 젖 안 나오는 산모는 그것 먹고 젖이 나왔다. 얼굴에 버짐 핀 아이는 그것 먹고 화색이 돌았다. 맞바위 부락은 비린 것 구경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두메산골이었다.
폭설로 조침령 넘는 길이 막혔던 그 해, 생선장수는 보름이나 맞바위 부락 신세를 지고 돌아가더니 이듬해부터 오지 않았다. 대신 군용 트럭이 들어왔다. 조침령 위쪽 반부등령으로 군용도로가 뚫린 것이다. 소금장수, 방물장수, 생선장수 등 다리 품 파는 행상들은 다른 곳으로 다른 일꺼리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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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홍성 기행문집 '꽃피는 산골'_하락도서_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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