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렌즈세상] 강민 시인 5주기를 맞아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조문호 승인 2024.12.22 12:08 의견 0
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조문호 렌즈세상] 강민 시인 5주기를 맞아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벌써 선생님께서 떠난 지도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세월에 고마웠다는 인사도, 먼저 떠나 섭섭하다는 원망도 모두 바람결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람 사는 게 바람처럼 이렇게 가벼운 것입니까? 요즘 부쩍 눈물이 많은 걸 보니 나도 늙었나 봅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니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인사동 사람들' 전시가 끝난 후, 선생님 초상사진을 챙겨들고 동오리 선생님 댁을 찾아갔을 때 일입니다. 따뜻하게 반겨주시는 선생님 내외분의 행복한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기어이 끌어 앉혔는데, 이국자 선생님께서 끓여주신 된장국은 콧등이 시리도록 맛있었습니다.

방문 앞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은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어쩌면 인생이란 것 자체가 슬픈 것일까요? 그리고 천상병시인 20주기를 맞았을 때 일입니다. 여기 저기 구걸하여 챙겨 준 돈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인사동 행사 때마다 오직 선생님만 걱정해 주셨습니다. 말씀은 없었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언제나 인사동 풍류가 사라지는 것을 가슴 아파 하시지 않았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니, “인사동 연가“ 시사전을 함께 열자는 제안도, 때로는 선생님 부름에 나서지 못했던 일도 마음에 걸립니다. ‘인사동 아리랑’ 황혼 편에 나오는 선생님 시 구절에 더 가슴 아픔니다.

“어딘가 전화라도 걸까

눈시울만 시큰할 뿐

휴대전화를 만지는 손가락은 뻣뻣이 움직이지 않는다”

선생님, 기어이 손가락이 뻣뻣해 전화하지 못했습니까? 이제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인사동은 불 꺼진 등불입니다. 누가 선생님처럼 밥 먹자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변하는 인사동을 걱정하는사람도 없습니다. 외로운 친구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러내어 곰탕 건데기 건져놓고 소주잔 부딪히는 그런 시간을 어디서 만나겠습니까?

선생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틀린 말이지 예. 그곳 저승은 높거나 낮은 차별의 세상도 없을테고, 설사 차별이 있다 해도 선생님 빽으로 지옥에 내치지는 않겠지요?

선생님! 선생님의 시에 대한 지조와 인사동을 사랑했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이 노래하신 “인사동 아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 잊으시고 편히 잠드십시오. 머지않아 선생님이 좋아 하시는 복분자술 챙겨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못난 문호가 큰 절 올립니다.

202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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