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산중서재] 식물화가의 일상 / 안기령

김홍성 승인 2024.12.22 12:10 의견 0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홍성 산중서재] 식물화가의 일상 / 안기령

영국 보타니컬 아티스트 SBA DLDC과정을 시작한지 일년 반. 이제 10번째 과제를 마쳤다. 앞으로 남은 건 논문을 대신하는 두개의 디플로마 과정을 남겨놓고 있는데 점점 과제의 양이 많고 까다로와 지고 있다.

식물화가의 일상은 이른 아침 눈을 떠서 대충끼어 입고 세수는 패스~ 왜냐면 내가 만날 대상은 꾸미지 않아도 아무 편견 없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털털하게 바구니 하나와 장갑을 챙겨 자연속으로 들어가면 새들은 아름다운 지저귐으로, 바람은 신선함으로 물은 청명한 재잘거림으로 지난 밤 숲의 소식을 전해준다.

비가온 날이면 시냇물은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빠른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며칠사이에 먹음직하게 잘 익은 산딸기는 기다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짜릿한 맛을 선사한다. 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염주 괴불주머니 꽃은 새색시의 정갈한 버선코를 연상시키고 줄줄이 사탕처럼 달려 있는 염주귀불주머니의 씨앗들은 독특한 모양으로 낯설다.

산속의 습기를 듬뿍 머금은 산수국은 옹기종기 모여 고귀한 푸른빛을 뽐낸다. 이 순간 아름다운 빛깔에 매료되어 사진 한컷 찰칵. 개울 옆 풀숲에 작고 오묘한 파란색의 꽃잎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닭의 벼슬을 닮아 붙여진 이름 닭의 장풀(달개비). 이 식물은 내게 있어 유년시절의 한 조각이다.

집 앞 강가에서 얼굴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하루종일 놀던 일곱살의 나는 식물의 고깔을 열어 쌀알 만한 씨앗을 쪼개보고 탱글거리는 촉감에 먹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아무거나 다 먹어봤던 꼬맹이였다. 그 맛은 씁쓸한 풀맛! ㅎㅎ 싱그런 초록의 식물들. 난 이런 식물들을 너무 사랑한다.

자연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바람에 흔들거리며 손짓하는 분홍 달맞이꽃.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암술은 예수의 십자가를 닮았고 수술은 8개, 꽃잎의 정맥들은 내몸속의 핏줄을 연상케 한다. 이 정맥들은 식물의 생명줄.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할 터인데 빛깔까지 짙은 분홍색. 너무도 아름답다.

바라볼수록 아름답고 의미를 부여할수록 귀한 것들. 난 이런것들을 사랑하나보다. 무용하지만 아름다운것들. 달, 별, 꽃, 풀, 은하수, 바람, 산내음, 시냇물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빗소리... 이런 모든 것들이 영원하기를.

집으로 돌아와 채집한 식물들을 선택하고 우선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선택한 식물을 관찰하고 자료를 찾아 연구하고 그 식물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스케치 한다. 아름다움 보다는 사실에 충실한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모아진 스케치들은 한장 한장의 연구 자료가 되고 작품을 만들기 위한으로 밑그림이 된다. 준비 과정부터 작품 완성까지 한달이 꼬박 걸렸다. 하지만 만족감은 최고다. 이것이 식물화가의 일상. 이속에 행복이있다.(출처 안기령)

[사진=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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