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 와인전문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기고 김준철] 와인 한 병으로 시작된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목표는 신속한 전투로 프랑스를 퇴패시키는 것이었으나,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과의 참호전으로 얽히게 되어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장기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구불구불한 참호 곳곳에 기관총 초소가 있었고, 대포 자국으로 생긴 진흙 구덩이에 휘감겨 있는 철조망 사이에 양쪽에서 손을 댈 수 없는 시신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이 시작되었다.

1914년 겨울, 영국의 제4사단은 ‘무인 지대(No Man’s Land)’에 배치되어 독일 사단과 마주하고 있었다. 1915년 초 영국 신문에 실린 내용에,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오후 7시 30분 경 독일군이 촛불을 켜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 후, 독일군 중 한 명이 영국군에게 자신들의 참호로 건너와서 독일산 와인 한 병을 받아가라고 소리쳤다. 영국군 한 명이 그 도전을 받아들여 큰 케이크를 가져가 교환했다. 이렇게 시작되어 이들은 중간쯤에서 만나 악수하고 참호 앞 도랑에 있는 시신을 매장하고,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하였다. 독일군은 매우 좋은 사람들처럼 보였고, 전쟁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서로 죽이려 했던 사람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와인 병을 나눠 마시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해가 뜨자, 이들은 같이 축구를 하고, 카드놀이도 함께 하였으며, 선물도 주고받았다. 이발사였던 한 영국 병사는 독일 병사의 이발도 해주었다.

이 크리스마스 휴전은 제4사단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서부전선의 여러 곳에서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촛불과 캐럴이 울려 퍼졌고, 병사들은 참호를 떠나 적군과 친목을 나누기 시작했다. 교환할 선물이 없으면 병사들끼리 서로 와인은 물론 코냑, 슈납스, 럼, 맥주 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담배 상자와 식량 배급품도 함께 나누었다. 전체적으로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에는 무인지대 뿐 아니라 서부전선 전역에서 1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월 26일, 이들은 다시 참호로 돌아갔고 전쟁은 바로 신속하게 재개되었지만, 이 사건은 오랫동안 광기 속에서 형제애가 승리한 순간으로 여겨져 왔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약 10만 명의 영국, 프랑스, 독일 병사들이 참호를 떠나 이틀간 교류하며 서부 전선에서의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한 장소에서 ‘한 병의 와인’으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15년에도 일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이 있었지만, 1914년만큼 광범위하지는 않았다. 이후 전쟁이 더욱 잔혹해지면서 크리스마스 휴전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이란 나라를 위해서 싸운다는 명목으로 나가지만, 실제 전쟁터는 잔인한 살인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파괴, 방화, 절도,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다 저질러지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곳이다.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절대 겪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전쟁이다.

동일한 종교를 믿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끼리 “왜? 싸워야만 했을까?” 하기야,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