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원 작가, 독서지도사 [사진=더코리아저널]
[변대원 독서일기] 1월 1일에 죽음을 생각한다.
1월 1일 아침이다.
요 며칠 다시 새벽독서를 시작해서 그런지 어젠 일찍 잠들었고, 새벽엔 일찍 눈이 떠졌다.
핸드폰 알람 없이 일어나는 건 늘 기분 좋은 일이다.
충전기를 찾아 핸드폰을 충전하고, 샤워를 하고,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조용한 집을 나와 사무실로 왔다.
아직 밖은 어둡지만, 새해는 밝았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지만, 모두가 오늘부터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거라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에 따라 나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건 좋은 일이다.
조용히 명상을 하고, 쓰고 싶은 것을 노트에 적어본다.
문득 생각해 보니 편의점에 책이 도착했다고 알림이 왔는데, 깜박하고 그냥 사무실로 와버렸다. 커피도 한잔 살 겸, 다시 사무실을 나선다. 샷하나를 추가한 따뜻한 커피와 책을 받아왔다. 조용한 재즈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새로 산 책 속으로 들어간다.
존 릴런드의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은 뉴스위크 편집자이자, 뉴욕타임스 기사인 작가가 "여든다섯, 그 너머"라는 주제로 85세 이상의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지혜를 정리한 책이다.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 생각나는 책이다. 그 책은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얻을 수 있었던 지혜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문득 20년, 30년 뒤의 한참 나이 든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20대 중반에 떠올려본 20년 후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달랐던 것처럼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래의 나는 실제 그때의 나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은 제법 의미 있는 시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몸은 찌뿌둥하고,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플지 모른다. 반대로 지금 70세 어르신들이 예전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느껴지지 않듯이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는 좀 더 쌩쌩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관리의 문제겠지만.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감아본다. 죽음을 앞둔 늙은 내가 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후회하고 있을까?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녀에게, 손주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후회 없이 살라고,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라고,
세상의 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라고 말한다.
다시 시계를 되돌려 2025년 1월로 돌아온다.
죽음은 아쉬움 그 자체다. 죽음은 잘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죽음은 삶을 더 뜨겁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더 후회 없이 살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준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보통사람보다는 조금 심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번 무안사고 이후에 통화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닌데도 그 영상을 본 뒤로 자꾸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나도 다시 비행기를 타면 약간의 공포감을 더 느낄 것 같다. 그런데 왜 가슴이 더 뛰는 걸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을 더 선명하게 느끼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인간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는 아마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후회하게 될 테다. 올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집중할 수 있고,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내 삶의 작은 디테일에 세밀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점점 차가워지는 이 현대사회를 어떻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의 동의어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면, 삶은 무척이나 지루해지고 만다. 엔딩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고, 영화도 없고, 소설도 없고, 삶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1월 1일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한 해를 조금 더 밀도 높게 만들어 줄 테니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사진=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