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학자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1.
다음 문장이 오늘의 화두이다.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에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몽테뉴) 탐욕을 제어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제어해야만 만족을 얻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탐욕(貪慾)에서 탐(貪)과 빈(貧)은 이렇게 다르다. "부유하면서 정신적 가치도 풍요롭기는 불가능하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이 중요하다.
물질적 가치를 선택해서 완전히 동물 이하로 살거나, 정신적 가치만 추구하며 모든 물질적 혜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게 아니고, 물질과 정신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문제이다. 두 가지를 다 원한다면, 그건 탐욕(貪欲)이다. '탐(貪)자'는 조개 '패'자에 이제 '금'자로 이루어져 있고, '빈(貧)'자는 조개 '패'위에 나눌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탐욕(貪慾)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청빈(淸貧, 맑은 가난)은 그 것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마하트마 간디)
2.
탐욕은 불교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하다. 깨달음, 지혜를 얻으려면, '탐진치(貪瞋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탐진치'는 우리를 삼키는 세 가지 독이다. 탐진치는 '탐욕(貪欲)', '진에(瞋恚)', '우치(愚痴)'를 줄인 말이다. 요즈음 쓰는 말로 하면, '욕심', '성냄', '어리석음'이다.
▫ 탐욕은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을 말하며, 본능적 욕구의 경계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이다. 가장 강한 독이다. 왜냐면 뒤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진에는 노여움, 또는 성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부딪쳐 미워하고, 화내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뜻에 맞지 않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에게 나타내는 증오심과 노여움, 시기심, 질투심이기도 하다.
▫ 우치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무식 無識)'이다.
이 삼독(三毒)이 살아가는데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것을 '아집'과 '무지', 두 가지로도 말할 수 있다. 아집, 나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이 일으키는 번뇌를 알지 못하는 무지를 말한다. 공부로 지혜를 키워야, 이 삼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탐진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계정혜 戒定慧'이다. 진, 노여움, 즉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대인관계를 줄이고,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이 '계戒/정定/혜慧'이다. 계율을 지켜 실천하는 계,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정, 미혹을 끊고 진리를 주시하는 혜이다.
3.
탐욕 이전에 욕망부터 관리해야 한다. "욕망의 억제는 소박함(樸)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 소박함을 일깨우는 검소한 차실(茶室)이나, 기도하는 작은 골방 같은 구별된 공간을 갖는 일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다. 몸 안에 영혼이 있고, 영혼이 우리를 이끌고 간다. 영혼이 메마르면, 몸도 마음도 메말라 버린다.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물을 주어야 한다.
묵상이 우리의 영혼에 물을 주는 시간이다. 물을 주는 묵상은 골방에서 홀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품위는 오랜 세월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꼼꼼하게 경험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얻는다. 품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갖춰 보려고 애쓰는 것은 못 생긴 여자가 아름다워지려고 애쓰는 것만큼이나 헛된 짓일 것이다. '위대한 개인'은 오랜 세월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꼼꼼하게 경험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얻는다. 그것이 자기만의 골방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이다.
4.
우리들의 욕망은 대개 명사이다. 그 욕망에 어떤 형용사가 붙는가에 따라 지켜야 할 욕망과 버려야 할 욕망으로 나뉜다. 그 기준은 얻고자 하는 행위의 의도가 중요하다. 생명을 살리려는 욕망인가 아니면 생명을 죽이려는 욕망인가 그 기준이 중요하다. 내가 하려는 행위가 '왜'와 그 결과를 먼저 생각하면 그 기준의 답이 나온다.
옳지 않은 의도로 행위를 하면, 생명을 괴롭히고 죽이는 결과가 오고, 옳은 의도로 행위를 하면 생명을 기쁘게 하고 살리는 결과가 온다. 그래 인문정신은 한 마디로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선택이고, 자유라고 해서,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들에 몰두하는 삶의 방식은 옳지 않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무기(無記)"라고 한다.
그것은 소중하고 엄숙한 자기생명을 무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주체이다. 주체적인 생명은 남의 삶을 엿보거나 자기 삶을 헛되게 소비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느낌과 감동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생명이다.
5.
욕심/김상배
나무들이 제 먼저 알고
스스로 잎새를 지우는
깊고 깊은 가을밤에
아웃 부부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먼저 취한 아우가
마음을 비우고 싶다고
오싹한 소리를 했다
그때 제수씨가
마음을 비우려는 욕심이
어디 보통 욕심이냐고
아우를 핀잔했다
나는 제수씨의 빈 잔에
얼른 술을 채웠다
6.
에리히 프롬은 "욕심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을 소진 시키는 바닥 없는 구멍"이라 했다. 배철현 교수는 욕심을 "만족을 모르는 채 헛것을 갈망하는 괴물"이라 했다. 그러면서 배 교수는 "성공한 사람"이란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한 가지를 찾았거나 찾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성공의 방해꾼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보았다.
▪ 첫 번째 방해꾼은 부러움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렴을 한 적이 없고, 자신을 우주 안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남을 부러워 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섬기는 사람은 남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을 부러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기준을 스스로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인 양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이 고유한 것인 줄 알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을 배 교수는 "무식(無識)한 사람"이라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위한 최선을 모르는 채 어영부영 사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남을 부러워하는 삶, 남이 소유한 것을 나도 갖고자 하는 삶, 남이 말하는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 두 번째 방해꾼은 흉내이다. 흉내는 부러움의 표현이다. 부러움은 정신적인 활동이라면, 흉내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표현할 때 독창적이며 매력적이다. 반면 흉내를 내는 사람은 진부(陳腐)하다.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고유한 선율을 연주해보지만 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협화음으로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고유함에는 진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듣는 이의 마음 속에 있는 진정성과 공명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름다운 선율로 변화한다. 배 교수에 의하면, "흉내는 자신의 고유함을 포기하려는 자살행위"라 했다. '진부(陳腐)'란 자신이 무엇을 지녔는지 모르는 상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기(肉)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기를 소화해 에너지를 만들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란, 그 고깃덩이를 타인에게 진열(陳列)하고 자랑하는 일이다. 고기는 서서히 부패(腐敗)한다. 그는 서서히 진행되는 부패의 악취에 취해, 자신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밴 줄 모르고, 자신도 모르게 부패한다.
7.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고유한 나를 위한 최선의 경주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경쟁이다. 달리기를 위해서 가장 가볍고 간편한 복장이 필수인 것처럼, 삶의 달리기에서도 단출함, 즉 단순한 삶이 필요하다. 또한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를 목표점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선을 희미하게 만드는 마음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이 마음의 유혹을 배철현 교수는 '욕심'이라 하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욕심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 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욕심을 다음과 같이 끊임 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에 비유했다. "지옥의 휘몰아치는 바람은 결코 쉬는 법이 없다. 바람은 이 영혼들을 자신의 힘으로 끌고 다닌다. 그리고 그들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들은 뒹굴고, 부딪히고, 결국은 괴로워 소리친다." (<지옥> 제5곡 31-33행) 욕심은 "끝도 없고 만족도 없다"고 하면서, "그것은 배가 부른 데도 더 먹으려 하는 비이성적 습관이며, 권력을 쥔 자가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려는 횡포"(배철현)이다. 한자 욕심(慾心)에서 욕(慾)자를 해자하면, 배가 불렀음에도 더 많은 곡식(谷)을 하품(欠)하듯 입을 벌려 넣으려는 마음(心)이다.
8.
거부하기 힘든 악마의 유혹이 식탐(食貪)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에 의하면, "인류는 요리법이 향상된 뒤 몸이 요구하는 것의 두 배는 먹는다"고 한다. 음식은 우리의 본성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육체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강력한 유혹이다. 우리 인간은 탐닉(耽溺)을 좋아한다. 탐닉의 사전적 정의가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거기에 빠짐"이다. '닉'자가 '빠진다'는 말이다. 마치 익사(溺死)처럼, 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어떤 것을 너무 즐겨 빠져 죽는 모습이다. 우리는 자신의 쾌락을 일깨우는 외부의 자극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한다. 문제는 이런 탐닉이 우리를 중독 시킨다는 것이다. 그 중 거부하기 힘든 게 식탐이다.
그래 붓다나 예수와 같은 성인들에게 흔한 습관 중 하나가 금식이다. 금식은 자신을 지배하는 다양한 탐닉을 걸러내 자신을 주인으로 만드는 수련이다. 배철현 선생은 탐닉이 매우 미묘해서 확인이 힘들다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랜 수련을 통해 그 정체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수련을 하면, 그만큼 유혹에 끄덕하지 않는 내공을 갖게 된다. 무슬림들은 매년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수련한다.
그들은 해가 떠서 질때까지 세 가지 행위를 금지한다. 그건 먹고, 마시기 그리고 성행위의 특징은 본능적이란 데 있다. 그들은 금식을 통해 음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식의 소중함을 상기한다. 건강 검진을 앞두고, 우리는 금식을 강요당한다. 힘들지만 금식을 하고 나면, 음식의 소중함을 다시 기억하게 되고, 음식이 없어 먹지 못하는 주변의 사람들을 기억해 필요 이상의 음식을 먹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9.
나는 최근 먹는 것에 많은 관찰을 한다. 아무 거나 먹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방심하면 과식에 아무거나 먹는다. 그건 내가 내 자신인 배 속의 장기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인생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먹고 마시는 내 일상을 점검하여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더 나아가 그 깨우침이 오랫동안 수련을 통해 습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게 그 사람의 에토스이다. 그 에토스가 곧 그 사람의 평소 몸가짐이다. 이런 에토스가 무너지면 로고스, 파토스도 힘을 잃는다. 메신저가 신뢰를 잃으면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다. 앨버트 허시먼은 <<Exit, Voice, and Loyalty - 이탈, 항의, 충성>>에서 기업이나 조직, 국가가 퇴보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까를 연구했다. 조직이 싫으면 남아서 항의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충성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10 .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그리고 파토스(pathos). 이 세 가지 수사학적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이 일상의 습관에서 나오는 언행이며, 로고스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이성적인 판단과 대화다. 파토스는 그 사람에 대한 평판에서 나오는 아우라다. 파토스는 흔히 '감동'이라고 번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수사 능력일 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다. 에토스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로고스와 파토스가 자라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흔히 '에토스'를 인격(人格)이나 품격(品格)으로 번역한다.
에토스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만일 누가 인격이 훌륭하다고 말할 때, 그 인격은 무형이다. 만일 누가 품격을 지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품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Skdml '에토스'를 위해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사진=박힌표]